[광화문에서/이인철]‘교육감 투표’ 꼭 해야 하는 이유

  • 입력 2008년 7월 4일 02시 58분


# 6월 28일 밤 MBC TV 예능 프로그램 ‘명랑 히어로’는 ‘교육, 무한경쟁을 걱정하다’라는 제목과 함께 교육 문제를 다뤘다. 출연자가 ‘시험공화국 24시, 학원화로 추락하는 학교’라는 주제를 제비뽑기로 골랐다. 이 주제는 한 좌파신문에 보도된 내용이었고 출연자는 신문 보도 내용을 읽어주었다. 화면에는 ‘개구리는 우물 안에서 행복한데 왜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나’ ‘대한민국에서 사회계층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등의 멘트와 삽화를 보여줬다.

출연자들은 대부분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말을 쏟아냈다. “4·15 학교자율화 조치 이후 전국에서 일제고사가 부활돼 다달이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진행자의 발언을 큰 자막으로 부각하기도 했다.

# 2일 밤 같은 방송 프로그램 ‘황금어장’의 ‘무릎 팍 도사’ 코너에는 유명 영화감독이 출연했다. 아이 셋을 뒀다는 이 감독은 “요즘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하면서 “최근 한 시민단체 모임에서 충격적인 통계를 들었다. 입시문제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이 8000명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이는 베트남전쟁 참전 전사자 수보다 많다”고 말했다.

우연히 두 프로그램을 보면서 재미 삼아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이런 민감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지만 어떤 정책이 옳은지는 사람마다 달라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나 개인적인 의견이 아무런 여과 없이 공중파를 타고 있다.

새 정부가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고 초중등교육정책의 권한을 시도교육청으로 넘기는 등 학교자율화 조치를 발표한 이후 교육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촛불집회 이후 좌파진영은 ‘미친 교육’이란 구호를 내걸고 공세를 취하고 있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학생 시민을 선동하는 반교육적 용어와 교육을 정치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3일 전북도교육감,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실시된다. 학교운영위원이 대신 뽑던 교육감을 이제는 주민이 직접 뽑는다. 전북은 3명, 서울은 9명이나 출마를 선언했다. 서울시교육감은 학생 148만여 명의 교육을 책임지고, 교원 및 행정직원 6만 명의 인사권과 연간 예산 6조1500억 원을 다루는 막강한 자리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자리는 더 높지만 인사할 수 있는 대상은 1100명 정도다. 더욱이 초중등교육에 관한 권한이 교육감에게 대폭 넘어가면서 가히 ‘교육 대통령’이라 부를 만하다.

대통령,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 모든 선거가 중요하지만 내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교육감 선거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유권자의 관심은 매우 낮다. 최근 충남도교육감 선거 투표율은 17.2%에 불과했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의 여론조사에서도 선거일을 모른다는 응답자가 71.9%나 됐지만 주민직선제를 아는 사람은 28.1%,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27.9%에 그쳤다. 교육감의 권한 등을 알려준 뒤 투표의사를 묻자 58.8%로 높아졌다고 한다.

그렇다. 내가 뽑는 교육감이 얼마나 중요한 정책을 집행하고, 내 아이에게 큰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해 보면 가만히 앉아 있을 일이 아니다. 휴가철 한여름 땡볕에 투표장에 나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한국인의 교육열을 투표율로 보여 주면 어떨까.

이인철 교육생활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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