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양정례 씨 17억원’ 영장기각 친박연대 면죄부 아니다

  • 입력 2008년 5월 4일 22시 54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홍승면 부장판사가 친박연대 양정례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의 어머니 김순애 씨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홍 부장판사는 “지금까지 수집된 증거와 수사에 임하는 태도에 비춰 볼 때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없다”고 사유를 밝혔다. 불구속 수사와 불구속 재판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하는 헌법 규정에 따른 형사사법 절차의 대원칙이다. 홍 부장판사가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김 씨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런데 홍 부장판사는 “김 씨가 당의 공식계좌에 실명으로 송금했고 이런 송금 내역은 선거 후 정당의 신고를 거쳐 일반에 열람된다”며 “김 씨가 친박연대에 송금한 돈 외에 공천과 관련해 당직자들에게 금품을 교부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부연 설명했다. 올 2월 신설된 공직선거법 47조 2항은 “누구든지 정당이 특정인을 후보자로 추천하는 일과 관련해 금품이나 그 밖의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 정치에서 해묵은 공천 관련 금품수수를 근절하려는 것이 이 조항의 입법 취지다. 당의 공식계좌에 입금한 특별당비라 하더라도 공천과 연관성이 있다면 위법이라고 해석해야 옳다.

그동안 전전긍긍하고 있던 친박연대는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이 정치논리로 꿰맞춘 수사를 했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검찰은 “공천을 대가로 제공된 검은돈에 법원이 면죄부를 줬다”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도 서청원 씨 등 당직자들에 대한 수사를 벌여 관련 자료를 충분히 확보한 뒤에 영장을 신청했더라면 이런 낭패를 당하지 않았을 수 있다. 검찰은 더욱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직을 매매하는 공천 비리를 샅샅이 밝혀내야 한다.

공직선거법 47조 2항이 신설된 후 첫 사건이어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하급심 법관들의 판단이 다소 엇갈릴 수도 있다. 모쪼록 입법기관인 국회의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판결이 나와야 할 것이다. 정치권이 깨끗해지지 않고는 선진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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