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부시 대통령님, 믿어도 될까요”

  • 입력 2008년 5월 2일 02시 59분


2004년 8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을 돕다가 그 뒤 자국에서 반역자로 박해받던 라오스 몽족 1만5000명을 미국 정부가 수개월 내 미국에 집단 이주시키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탈북자인 기자는 큰 감동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미국으로 받아들이고, 탈북자 구출을 위해 4년간 매년 2000만 달러를 쓸 수 있도록 규정한 북한인권법에 서명했다.

미국의 인도주의 정신에 기자는 다시 감동했다. 기대에 부풀어 “중국의 탈북자 1명을 안전한 제3국으로 탈출시키는 비용이 대략 2000달러 정도이니 4년 뒤에는 4만 명에 가까운 탈북자가 구출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성급한 계산도 해봤다.

그러나 3년이 지난 2007년 11월. 크리스천 휘턴 미 국무부 북한인권담당 부특사는 뜻밖에도 “북한인권법 예산은 단 한 푼도 의회의 집행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2008년 4월. 미국행을 요청하며 태국 감옥에 갇혀 있던 탈북자들이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미국행을 신청한 지 2년이 넘은 탈북자도, 암에 걸린 탈북자도 있었다.

이어 4월 30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는 북한인권법을 2012년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법안 연장 발의문에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는 37명이며 같은 기간 한국은 5961명, 영국과 독일도 2000년부터 2006년 사이 각각 60명과 135명의 탈북자를 받았다”고 명시돼 있다. 이럴 거면 북한인권법을 왜 만들었는지 의문이 든다.

이를 의식한 듯 연장 법안에는 “미국의 보호를 원하는 탈북자들을 위해 미국 정부는 외국 정부의 협력과 허가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대목이 추가됐다. 미 의회와 행정부에 좀 더 적극적 조치를 주문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미국은 자유를 부르짖는 북한 인민과 같은 편에 설 것”이라며 “나는 탈북자들의 험악한 상황과 고통에 대해 심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고마운 말이다. 그러나 사지를 헤매는 탈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려가 아닌 실질적인 도움이다.

만약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에 기자가 있었다면 이렇게 물었을 것 같다.

“대통령님, 이번에는 믿어도 될까요?”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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