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국회 60년, 국회의장 인물난

  • 입력 2008년 4월 27일 19시 48분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옛날 기억이 새삼스러울 것이다. 김종필(JP)의 뒤를 이어 충청당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불과 2석이 모자라 국회 교섭단체(20석)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8년 전 16대 국회 개원 때 JP의 처지가 꼭 그랬다. 당시 JP의 자민련은 17석. JP는 연합정권 파트너인 김대중(DJ) 대통령에게 “국회법을 개정해 교섭단체 요건을 10석으로 낮추자”고 졸랐다. 교섭단체가 되지 못하면 하다못해 상임위원 배정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의석 분포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133석인 반면 여당인 민주당과 자민련은 각각 119석과 17석이었으니 DJP 공조가 돼야 여대(與大)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권은 국회법 개정작전에 나서 ‘상임위 날치기’까지는 성공한다. 그러나 본회의장에서 이만섭 의장에게 막히고 만다. 이 의장이 “날치기는 절대 안 된다”며 직권상정을 거부한 것이다. 이 의장은 민주당 소속. 김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다수결 원칙’을 강조했지만, 이 의장은 “국회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말을 자른다.

DJ는 도리 없이 민주당 의원 3명을 자민련에 꿔준다. 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의원 꿔오기’에 반발한 사람이 대전의 강창희 의원. 강 의원은 결국 제명당한다. 그는 이후 한나라당으로 옮겨 최고위원까지 됐지만 이번 총선에선 떨어졌다. 당선됐다면 6선 의원으로 아마 거의 확실하게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장 후보가 됐을 것이다.

강재섭 대표와 박희태 김덕룡 의원도 금배지를 달지 못하고, 이상득 정몽준 의원이 ‘특수 사정’으로 후보군에서 제외돼 18대 국회 전반기(2년) 의장은 5선의 김형오 의원 말고는 대안(代案)이 없는 듯하다. 무색무취하고 정치인 중에서는 그나마 ‘먹물 과(科)’에 가까워 “낫 배드(Not bad·나쁘지는 않다)”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선수(選數)와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경력이 마음에 걸린다.

국회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곳이다. 그런데 김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설계 작업을 맡은 당 쪽 책임자였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국회의장으로는 결함이 있는 경력이다. 하기야 4선에 노무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지낸 임채정 의원도 17대 후반(현재) 국회의장을 하고 있으니….

올해는 건국 60주년이자 대한민국 국회 개원(開院) 60돌(5월 31일)을 맞는, 헌정사에 큰 획을 긋는 해다. 그러나 60돌을 맞아 개원하는 18대 국회에 대해 걱정들이 많다. 특히 한나라당 의석이 과반을 넘고, 지방선거를 빼고는 이명박 정권이 끝날 때까지 선거다운 선거가 없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입법부로서의 국회는 실종되고, 정당대결만 난무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없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국회의장의 인품과 자질, 경륜이 돋보여야 하는 시점인데, 최악의 인물난을 겪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여당이 의장을 맡는다는 관행만 벗어던지면 다른 답이 없지도 않겠지만 너무 무리한 주문일 것 같고, 그 대신 이만섭 의장의 16대 국회 개원사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저는 앞으로 의사봉을 칠 때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고, 마지막 한 번은 방청석(국민)을 바라볼 것입니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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