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국]‘차별금지법’ 장애인 실질적 인권보호 계기로

  • 입력 2008년 4월 9일 02시 58분


2000년대 이후 도로나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을 점거하거나 삭발, 단식을 행하고 나아가 대통령 초청 청와대 회의에서 뛰쳐나가는 등 장애인들의 투쟁은 격렬하게 진행됐다. 기존의 제도가 자신들의 꿈과 고통을 이해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하자 장애인들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투쟁의 결과 작년 4월 10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고, 이 법은 올해 4월 11일자로 시행된다.

그동안 장애인 관련 법률이 장애인을 단지 시혜나 배려의 대상으로 규정했지만 이 법은 장애인을 인권의 주체로 자리 매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 법의 취지와 내용이 널리 알려져 있지 못해 많은 홍보와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다.

먼저 이 법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여섯 영역으로 나누어 적시하고 있다. 즉 △모집·채용, 임금과 노동조합 활동 등 고용에서의 차별, △학교 입학·전학 등 교육에서의 차별, △시설물 접근·이용과 이동·교통수단 등에서의 차별,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보장에서의 차별, △임신·출산·양육 등 모·부성권에서의 차별, 성을 향유할 권리의 차별, △가족·가정·복지시설·건강권에서의 차별 등이 그 예이다. 정부기관과 사기업, 시민 개개인도 이상의 차별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유념할 점은 이 법이 장애인에 대한 ‘직접차별’만이 아니라 ‘간접차별’도 금지한다는 점이다. 간접차별이란 형식상으로는 장애인을 불리하게 대하지 않지만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해 결과적으로 장애인에게 불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직접차별은 줄어들겠지만 대신 간접차별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애초에 봉쇄하고자 하는 것이다.

앞으로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업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전담하면서 시정권고를 하게 된다. 이 권고를 받은 자가 인권위의 권고를 불이행하면 법무부 장관은 시정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 악의적인 장애인 차별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이 내려지며, 법무부 장관의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상당히 엄격한 제재가 가해진다.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은 약 200만 명이다. 그러나 등록되지 않은 장애인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약 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볼 때 국민의 10% 정도가 장애인이며, 장애인 문제를 직접 느끼는 가족 구성원은 이 통계의 3, 4배에 이를 것이다. 게다가 장애의 약 90%는 선천적 원인이 아니라 질환과 사고 등 후천적 원인으로 발생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 이를 고려할 때 장애인의 인권 문제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비장애인 자신의 문제이다.

총선 때가 되면 비례대표로 장애인들이 영입되지만, 몇몇 장애인이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 장애인의 인권 개선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정신이 국가와 시민사회의 운영원리 속에 온전히 자리 잡고, 개개의 시민이 이 법을 활발히 활용하는 것에 달려 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국가인권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