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8주년]“직설화법 피하고 6者틀서 남북관계 관리를”

  • 입력 2008년 4월 2일 03시 03분


통일연구원 서재진 북한연구실장(왼쪽)과 동국대 김용현 북한학과 교수가 1일 북한워치포럼 대담을 한 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변영욱  기자
통일연구원 서재진 북한연구실장(왼쪽)과 동국대 김용현 북한학과 교수가 1일 북한워치포럼 대담을 한 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변영욱 기자
긴급대담 : 北 잇단 도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1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핵·개방3000’ 등 새 정부 대북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에서 남측 당국자 11명을 사실상 추방한 데 이어 서해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외무성 담화 발표, ‘남북 당국자 관계 중단’을 경고하는 군 전화통지문 발송 등 대남 대미 압박의 강도를 높여 왔다. 긴 침묵 끝에 행동에 나선 북한의 의도는 무엇인가. 한국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본보는 창간 88주년을 맞아 신설한 ‘북한워치포럼’ 첫 번째로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과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의 긴급 대담을 마련했다.》

공동기획:동아일보,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북한대학원대

○북, 과민반응인가 치밀한 계산인가

▽서재진=1일 노동신문 논평은 북한의 과민반응에서 나온 것이다. 남한의 총선이 다가오는 시점에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고 국론을 분열시켜 대북정책을 더 유화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 같다. 논평은 그동안 관망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매우 비외교적이고 도발적인 의사표시를 했다.

▽김용현=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한의 대북정책 전환을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앞두고 노동신문을 통해 발표했다는 점에서 북한 내부를 향한 의미도 있다. 주민들도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비난했지만 미국과의 핵 협상 진전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꿀 여지를 남겼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이나 노동신문 사설 형태를 취하지 않고 논평원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한국과 미국 향한 북의 메시지

▽서=3월 말까지는 일련의 돌발 상황이었다. 이 정부가 의도한 방향도 아니고 북한의 의도도 아니었다고 본다. 북한은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오해하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김태영 합참의장의 돌출 발언이 잘못 전달돼 또다시 북한이 과민반응을 보인 것이다.

▽김=최근 북한의 행태에는 나름대로 정교한 틀과 계획성이 보인다. 세 가지 의도가 엿보인다. 첫째, 이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반발이다. 둘째, 한미 정상회담에서 예상되는 대북 강경 분위기와 합의를 사전에 약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북한과 동반자가 되지 않고는 경제회복이 어렵다는 메시지도 던졌다.

▽서=북한의 대남 압박과 대미 압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남용으로만 확대 해석하면 북한의 행동을 과잉 해석할 우려가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남쪽이 아니라 동북쪽으로 쏜 것은 핵 협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핵 폐기 2단계 완료와 관련해 지난달 제네바에서 모종의 합의가 이뤄진 뒤 양국 정부가 막바지 결단을 앞둔 상황에서 북이 행동을 취한 것이다. 북한은 과거 미국과 협상이 교착되면 미사일을 쐈다. 북한이 대남 협상용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적은 없다.

▽김=미국을 겨냥하면서 동시에 한국도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폭넓게 보면 중국을 포함한 6자회담 참여국들의 긴장을 유발하면서 상황을 타개하자는 의도가 강하다.

▽서=일련의 행동은 협상을 재촉하려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북한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핵문제의 진전을 이뤄 양국 국교를 정상화하고 테러지원국과 적성국 명단에서 빠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 내 강경파들이 북한에 대한 요구조건을 강화하려 하자 난감해하고 있다. 또 남한도 대북정책 실행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태여서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과거 절망적인 상황에서 상대방을 자극해 협상을 촉진해 왔다.

▽김=그렇다. 북이 지금 분위기에서 판을 깰 수는 없다. 다만 “우리의 입장을 더 반영해 달라”,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이나 핵 확산 등은 없다고 인민들에게 말한 것을 번복하기 힘들다”, “적절한 중간선을 찾자” 등의 의도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물리적 충돌은 가능성 낮아

▽김=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와 남한 총선 때까지 상황을 끌고 갈 가능성이 있다. 최고인민회의에서 남한에 대한 압박을 내부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까지 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 후까지 상황을 끌고 가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의 동시 악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한미 정상회담은 세계적인 뉴스다. 양국의 국민 여론이 반영되는 방향으로 회담이 진행된다. 북한이 회담을 앞두고 긴장 상태를 끌고 간다면 부시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된다. 과거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을 펴 성공해 왔지만 지금의 북한은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이번에 국민들은 서해안 미사일 발사에 대해 코웃음을 치지 않았는가.

▽김=그러나 북한은 예상했던 것보다 항상 조금 더 가는 경향이 있다. 우선 서해안에서 미사일을 한 번 더 쏠 수 있다.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공사 중단도 가능하다. 상징적이지만 결정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에서의 국지전이나 서해상에서의 충돌 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남북관계를 1, 2년은 하지 말자는 이야기나 다름없어 가능성이 적다.

○군사적 발언 안하는 미국 배워야

▽서=6자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부시 행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대북 합의사항을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불확실해지고 이는 국가 이익에 도움이 안 된다. 민감한 시점에 남과 북이 실익 없는 설전을 통해 회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김=정부가 6자회담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적절히 남북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핵심적인 부문에 대한 당국 간 대화가 모색돼야 한다. 대통령이나 당국자들이 일방적으로 남한 내부를 향해 이야기하는 것에서 나아가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도 생각하면서 정제된 발언을 해야 한다. 비핵·개방3000 등 공약도 북한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오는 말만 가지고 북이 반응하는 문제를 없애야 한다.

▽서=중요한 지적이다. 대북정책의 청중은 남한과 북한 둘이다. 최근 당국자들이 남한만을 청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비외교적인 발언을 삼가야 한다. 가능하면 공식적인 발언 외에 개별적인 발언을 하지 말자.

▽김=김 합참의장 발언은 시점이 좋지 않았고 직설적인 어법이었다. 김 의장 발언을 기화로 북한 군부가 남북관계에 개입하는 모습은 좋지 않다.

▽서=부시 대통령도 북한을 압박할 때 군사적 옵션에 대해서는 발언한 적이 없다. 북한 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푼다고 했지 정밀타격(surgical strike) 등을 말하지 않는다. 강대국 미국이 북에 대해 외교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김=주변 국가들의 역할도 동원해야 한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중국이 간접적으로라도 북한이 상황을 더는 악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러시아도 역할을 고민하도록 외교적인 노력들을 해야 할 시점이다.

▽서=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북한이 남한에 기대하는 역할이다. 북한은 부시 정부의 임기 말을 맞아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다. 북한의 최근 행동은 극단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북한식 반응으로 보고 안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해법이다.

▽김=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정부 차원의 식량과 비료 지원 문제다. 비료는 늦어도 6월에는 뿌려져야 한다. 운송 시간을 감안하면 4월 말까지 협의가 끝나야 한다. 대한적십자사라도 나서 대화의 길을 뚫었으면 좋겠다.

▽서=여야 모두 남북관계 관리의 민감함을 인식하고 초당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 국민들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가 복잡한 국제정세에 얽혀 돌아가는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남북 갈등 상황은 수습되어야 한다. 남북관계 안정화와 6자회담 모멘텀의 유지는 필요하지만 북한에 대해 원칙있고 꿋꿋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에 가까운 비난에는 주의를 주어야 한다.

▽김=1일 노동신문 논평에 대해서는 바로 대응하기는 어렵겠지만 잠깐 열기를 식히며 대화의 통로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들을 계기로 한국이 남북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남북관계 관리의 실질적인 마스터플랜과 로드맵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정리=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서재진 실장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현)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위 자문위원

△북한대학원대 겸임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 미국 하와이대 석·박사(사회학)

:김용현 교수

△동국대 북한학과 조교수(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학사, 동 대학원 석·박사(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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