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금 1원도 아끼겠다’는 정부에서 벌어진 일

  • 입력 2008년 3월 24일 03시 00분


서울 종로구 계동의 옛 해양수산부 사무실 부근 빈터에 사무용 의자, 책상, 냉장고, 탁자, 소파, 상자와 서류 뭉치가 뒤죽박죽으로 열흘간 쌓여 있었다. 해양부 업무가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로 넘어가자 공무원들은 몸만 떠났고, 새로 이사 온 보건복지가족부는 해양부 사무집기를 밖으로 쓸어낸 것이다. 며칠 전까지 쓰던 물건이니 대부분 멀쩡했다. 구입한 지 2년도 안 된 집기에다 개당 20만 원 가까운 의자도 있었다. 서류뭉치에는 해양부 장관 직인이 찍힌 공문도 있었다.

물건들은 언론의 보도가 있은 뒤인 22일 오후에야 급히 창고로 옮겨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버리려던 게 아니라 부처 협의를 거쳐 재활용하거나 가져다 쓰려던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을 두 번 화나게 만드는 둘러대기다. 공무원들은 집안 살림살이도 그런 식으로 팽개쳐 놓았다가 다시 가져다 쓴단 말인가. 부처가 재활용할 물건이었다면 일부 시민이 뒤져 가는 것은 왜 방치했는가. 공무원들은 국민 세금이 아니라 제 돈 주고 산 물건도 그런 식으로 관리하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예산 낭비를 줄이라”는 말을 셀 수 없이 한다. 과거 정부의 예산 낭비 사례를 지적하면서 ‘국민의 세금은 1원도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부처 집기 투기(投棄)사건은 행정 현장의 ‘세금 쓰기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새 정부 들어서도 여전함을 보여준다. 국민은 대통령의 말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은 아님을 거듭 알게 됐다. 대통령의 ‘확인 국정’이 진짜 필요한 부분은 이런 현장이다.

집기 방치로 날아간 국민 세금은 얼마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는 ‘예산 10% 절감’을 외치면서 뒤로는 이런 짓이나 하니 국민이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세금을 내고 싶겠는가. 공무원들은 ‘혈세(血稅)’라는 표현을 싫어하지만 국민의 피땀이 묻지 않은 세금은 없다. 새 정부는 세금 절약 실적을 언제쯤 보여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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