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대통령의 종교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나는 무신론자”라고 말하던 미하일 고르바초프(77) 전 소련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임을 털어놓았다고 유럽 언론이 떠들썩하다. 며칠 전 이탈리아 아시시에 있는 성(聖)프란체스코 신부의 무덤을 깜짝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그는 무덤 앞에서 “신부님은 내게 또 다른 그리스도였다. 내 삶을 바꿨다”고 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공산주의 지도자라는 신분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것이지, 사실은 신자일 것이라는 소문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스탐파는 한술 더 떠 “정신적 페레스트로이카(개혁)”라고 칭찬했다.

▷대통령도 정치 지도자이기 전에 인간이다. 힘들고 외로운 결정을 내려야 할 무거운 권좌를 지키려면 종교나 신앙이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대통령에게도 당연히 신앙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종교를 아편이라고 규정한 마르크시즘을 신봉하는 국가의 지도자들은 종교적 신앙을 갖고 있어도 고르바초프처럼 숨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특정 종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는 이슬람 국가 말고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 헌법도 엄연히 정교(政敎)분리를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의 종교는 선거전에서 표를 모으는 힘도 되지만 반대파의 타깃도 된다. 가톨릭 신자였던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1960년 대선 때 다수파인 개신교 신자들이 집요하게 종교를 문제 삼자 “나는 대통령 후보로 나선 미국인이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고 정면 돌파했다. 최근 중도 사퇴한 공화당 대선 주자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모르몬교도라는 공격을 받자 “하나의 집단이 아닌 오로지 국민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대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충남 예산 수덕사를 깜짝 방문해 18일 입적한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을 조문했다. 대통령의 조문은 종단 역사상 처음이다. 시중에서는 ‘장로 출신 대통령’이 다닌 소망교회 얘기가 심심찮게 나돈다. 불교계로서는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수덕사행을 ‘불교계 끌어안기’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인명진 목사는 “이 대통령은 개신교 신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개신교와 더 거리를 두어야 하고, 소망교회와는 그보다 더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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