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상돈]이라크戰결말, 민주화냐 상처냐

  • 입력 2008년 3월 19일 02시 55분


2003년 3월 20일에 이라크전쟁이 발발한 후 5년이 지났다. 미국이 월등한 화력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조기에 전쟁 종료를 선언했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 계획 당시에 예상치 못했던 희생이 많이 초래됐으며, 미국은 계속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전쟁의 시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라크와 중동 및 국제질서를 위해서 어떻게 전쟁을 마무리하고, 이라크의 비극적 상황을 전환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2007년 초 미국이 ‘신(新)이라크 전략’을 추진한 이후 이라크 치안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1년 전보다 이라크 전체에서 테러공격이 60% 감소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라크 내 폭력 확산 방지에 진전이 있다’는 응답이 지난해에는 18%였으나, 올해는 35%로 증가했다. 올해 초 이라크에 주둔했던 미군 15만6000여 명 중에서 2월에 1개 여단이 철수했고, 7월까지 더 감축해 13만여 명으로 유지할 예정이다. 현재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면 결코 추진될 수 없는 결단이다.

이라크전쟁을 통해 미국이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쉽게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과 군사력만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민심을 얻어야만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체득하며 미국은 현재 이라크 안정화를 위한 재건사업 추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이라크 문제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종파 간 갈등도 최근 해결 조짐을 보이고 있다. 후세인의 잔당이라는 이유로 단죄됐던 수니파 정치범 수천 명에 대한 사면안이 지난달 이라크 국회에서 통과됐다. 쿠르드 지방정부를 이롭게 한다는 이유로 표결을 미뤘던 이라크 예산안도 통과됐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선거도 올해 10월까지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여전히 많은 문제가 상존하지만, 이라크의 미래를 부정적으로만 보거나, 이라크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이라크인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며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국제사회는 인내심을 갖고 이라크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며 희망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전쟁 5년 후 중요한 것은 이라크 현실의 명암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지, 어느 한쪽만 봐서는 안 된다. 상황은 변하고 있는데, 과거 전쟁 발발 당시의 도덕적 잣대로만 현재를 재단해서도 곤란하다.

전쟁의 참상을 겪고 있는 이라크인들조차 미군 주둔문제를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한편으로 하루빨리 전쟁의 진정한 종료와 함께 미군 없는 세상을 원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군이 당장 철수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된다는 것을 알기에 인내하면서 미군과 함께 극단주의 세력에 대항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 전체의 18개주 가운데 9개주의 치안권을 미군으로부터 이양받은 이라크정부는 이르면 2009년에 이라크 내부의 치안상황을 스스로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아직은 종파 간 갈등과 사회불안을 부추기면서 이라크정부 및 미군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려는 목적으로 극단주의자들이 송유관과 발전소 등의 사회기간시설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인들이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뤄낸다면, 그것은 전쟁 전 후세인의 독재를 종식시키는 데 국한되지 않는 엄청난 성과가 될 것이다. 이라크의 민주화는 중동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국제질서의 안정화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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