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지형]수능과목 줄여도 사교육비는 안줄어

  • 입력 2008년 3월 13일 03시 03분


최근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 7개 사립대가 수학능력시험 국사과목 필수화를 재논의하기로 했다. 대학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명박 행정부의 대학자율화 정책에 따라 수능 과목이 5개로 축소되고 탐구영역, 제2외국어, 한문에서 최대 2과목만 선택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선택과목만 허용하는 입시제도는 다양한 인재 양성과 학생의 과목선택권을 보장할 수 없다.

국사 필수과목화 논란의 본질적 문제는 새 행정부의 입시제도가 여전히 과목 중심적 사고 틀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오늘날 세계 추세는 ‘학문 간 융합’으로 요약된다. 기존 분과학문의 벽을 허물고 소통하는 융합학문을 추구한다. 수능에 해당하는 미국의 SAT, ACT는 과목 경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다른 문제는 새 입시제도가 교육제도에 계량적 접근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입시 과목의 축소가 곧 사교육비 감소를 가져오리라는 장밋빛 환상이다. 그러나 과목 축소와 상관없이 교육열 높은 학부모는 자녀를 입시학원에 보낼 것이다. ‘분산’ 투자가 ‘집중’ 투자로 바뀔 뿐이다. 새 행정부의 정책 성공으로 국민소득이 향상되면 사교육비도 따라 증가할 것이다. 대를 이어 지위와 신분을 향상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사교육비 문제 해결책의 핵심은 사교육비의 양이 아니라 질이어야 한다.

새 입시제도의 또 다른 근본 문제는 입시제도에 대한 단선적인 전체론이다. 분명 한국 전체가 ‘입시지옥’에 빠졌다. 그러나 미국 명문대 지원자를 우리 학생과 비교하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SAT와 ACT 중 하나만 치러도 되는데 거의 모든 지원자가 둘 다 치른다. 모든 학생이 SATⅡ의 과목시험을 2, 3개 봐야 하고, 대학의 교양과목 수준인 AP의 2, 3개 과목시험을 치러야 한다.

시험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본다. 그뿐 아니다. 가능하면 고교 1학년부터 시작해 고교시절에 AP 과목 5∼9개를 들어야 하고 3학년 때는 대학의 고급 전공과목을 수강하기도 한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길러내는 것 못지않게 다양한 수준의 인재의 잠재적 역량을 일깨우고 평가하는 다양한 수준의 입시제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새 입시제의 가장 근본적 맹점은 일방적으로 대학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새 입시제도는 대학자율화를 추구하나 입시에 관한 한 대학 스스로 획득하지 못한다. 대학도 사회 구성원이며 사회의 결정요인에 좌우된다. 신뢰성 있는 객관적 전형요소가 다양하게 존재할 때만이 비로소 대학은 그 기준을 활용해 선발한다. 대학은 만능이 아니다. 잠재적 능력에 대한 평가도 학생이 속한 환경과 조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갖춰진 후에야 가능하다.

우리 대학들은 지구적으로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고 인재의 선발과 배출은 이 시대 대학의 본능이다. 사교육비 절감을 선전하기보단 사교육비의 가치 효용성을 향상시키고 ‘입시지옥’을 최우수 인재의 등용문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대학 책무를 강요하기보다는 전형요소의 다양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사회조건을 조성하는, 교육정책의 역발상이 없는 한 대학의 생존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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