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생활형 여성운동

  • 입력 2008년 3월 10일 02시 59분


1963년 “여성들은 중산층 가정이라는 안락한 포로수용소에 ‘여성의 신비’라는 이데올로기로 속박돼 있다”는 베티 프리던의 선언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렀다. 프리던은 수백만 부가 팔린 저서 ‘여성의 신비’에서 ‘행복한 현모양처’란 없으며 여성들은 남편과 육아에서 해방돼 실질적 성(性)평등과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낙태 권리, 출산 휴가, 채용과 승진에서의 양성 평등을 담은 그의 메시지는 여성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프리던류(類)의 투쟁적 페미니즘은 남성에겐 ‘거세 공포’를, 여성에겐 ‘계급적 분노’를 일으키며 안티페미니즘을 불렀다. 그 선봉도 여성이었다. 에모리대 역사학자인 엘리자베스 폭스제노비즈 교수는 “페미니즘 엘리트들은 여성의 진짜 관심사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작가인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스는 ‘누가 페미니즘을 훔쳤나’라는 저서에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젠더’ 개혁을 밀어붙임으로써 여성을 배신했다고 비판했다.

▷높은 교육열과 페미니즘 운동에 힘입어 한국 여성의 지위와 파워도 지난 수십 년 동안 급신장했다. 여성문제 전담 부처도 생겼고 호주제도 폐지됐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성매매예방법이 시행되고 있다. 육아문제가 걸림돌이긴 해도 여성의 사회 진출은 확대되고 있다.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도입과 고위직 여성 할당으로 정관계에서도 여성의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남성은 여성의 적’이라는 식의 분열적, 투쟁적 페미니즘에 반성이 일고 있다. 남성을 적대시하는 운동은 결국 남성의 반발을 부른다. 여성에겐 ‘일과 가정 모두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슈퍼우먼 신드롬을 확산시켜 피로감을 유발한다.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8일)을 맞아 국내 여성계도 ‘권리 쟁취’에 집중된 여성 운동을 공동체 회복에 중점을 둔 생활형 여성 운동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목소리 큰 일부 여성이 ‘과실’을 따먹는 구식 페미니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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