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국양]손에 잡히지 않는 ‘10년 후’

  • 입력 2008년 3월 7일 02시 46분


머리를 짧게 깎고 군에 갔던 큰 녀석이 제대하고 돌아왔다. 먼지 자욱한 논산훈련소 연병장에서 어설픈 예비군인들 틈에 끼어 대열을 지어 사라진 지 벌써 2년 2개월이 흘러 집으로 돌아왔다. 채신머리없다고 할 것 같아 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오기 전까지는 밤늦게 둘이 술 마시며 세상 이야기를 할 생각에 혼자 행복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기대와 달리 전혀 다른 사람이 돼 돌아왔다. 예전 같지 않게 방을 깨끗이 치우고,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살아갈 미래에 대한 걱정이 어깨를 누르나 보다.

재작년부터 국내 모 기업 회장이 10년 뒤에 먹고살 일이 걱정이라며, 임원들을 채근하던 일이 신문에 수차례 난 적이 있다. 요즈음은 대기업들도 주력 품종에서 세계 제일의 경쟁력을 가지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들도 새 사업종목 발굴에 사력을 다하고 있어,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기가 녹록하지 않다. 조금만 안이한 생각으로 사업을 하다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고, 부실기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더기가 된 산업기술 로드맵

이제는 국가도 개인, 기업과 같이 미래에 대한 걱정을 심각히 해야 할 때다. 옛날처럼 적당히 준비하고, 변화에 소극적 대응만 하며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그나마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가진 덕분에 버티지만, 10년 뒤에는 무슨 종목이 주력 산업이어야 하는지 대답이 간단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신임 장관들도 이런 고민을 하며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리라는 상상을 해본다.

“무슨 기술종목을 개발해야 국제경쟁력을 가질까” 하는 고민은 과거의 대통령과 장관들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도 취임한 후에 바로 해당 부처 관료들에게 새 성장동력 산업 종목의 도출을 요구했고, 그 결과 우리의 산업 과학기술 정책방향은 누더기 수준이 됐다. 6T 위주의 성장동력 분류, 국가 핵심기술 분류, 과학기술 체계 분류, 토털 로드맵 분류에 의한 종목 선정 등 전문가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산업과학기술 관련 위원회는 전문가 위원들의 의견을 모아 결론을 도출한다. 참여 전문가들은 학교 기관 기업 학회에 소속돼 있고, 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의견이 모아지지 않으면 다수결로 결정하거나, 단순히 모든 의견을 포함하는 결론을 내리기에 더 그렇다. 국가를 위해 논의를 시작하지만, 결론은 집단이기주의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도 중요한 국가 산업과학기술 관련 위원회 책임자 또는 위원의 다수를 외국인으로 위촉하는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경제, 경영 전문가와 과학기술자 사이의 충돌도 있다. 일례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는 기술은 ‘불연속적’ 기술과 ‘현상유지적’ 기술로 분류될 수 있고, 사업화는 불연속적인 기술로만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불연속적인 기술은 시장에서 성공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기존 시장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고 가벼운 플래시메모리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대체한다면, 두 사업을 동시에 하는 어떤 기업은, 플래시메모리의 개발로 자사의 하드디스크 사업을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창의적 발명, 발견으로 시작된 불연속적 과학기술 연구결과 덕분에 산업사회,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살게 된 것이다. 과학기술자에게는 기존 시장의 붕괴가 예상되고 사업화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값싸고 경쟁력 있는 종목 개발을 위한 연구로 새 시대를 열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정책입안자는 이해관계 떠나야

2007년 전 세계 연구개발 투자액은 1000조 원을 약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비 총액은 이 중 약 1%다. 이는 세계 10대 다국적 기업 중 한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액과 비슷한 수준이며,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적은 수준이다. 국가가 이를 전문가들이 속한 집단의 이해를 위해서만 투자할 경우 국가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업과학기술 정책 입안자는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모아 불연속적 기술과 현상유지적 기술을 모두 고려한 창의적인 기획을 추진해야 한다.

국양 서울대 연구처장·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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