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천광암]사회보험청 노조 반성문에도 싸늘한 日여론

  • 입력 2008년 3월 6일 03시 00분


“국민의 편의 향상에 마이너스를 가져다 준 부분도 있어 진지하게 반성한다.”

일본 사회보험청 직원노조가 연금제도개혁 관련 자문기구인 ‘연금업무·조직재생회의’에 이 같은 내용의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도쿄신문이 5일 보도했다. 노조의 반성문은 연금납부기록 증발 사태로 일본 전역에서 대소동이 일어난 지 약 10개월 만에야 나온 것이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에 역사적인 참패를 안긴 연금납부기록 증발 사태의 싹이 튼 것은 1974년. 당시 사회보험청은 그때까지 수작업으로 작성했던 연금납부기록의 전산화에 착수했다.

전 국민의 노후 복지가 걸린 중요한 일인데도 사회보험청은 입력 작업 대부분을 초보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 맡겼다. “업무량이 많아 정규 직원들에게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명감도, 전문성도 없는 초보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이름이나 주소, 나이 등을 틀리건 말건 주어진 작업량을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그 결과 무려 5000만 건에 이르는 납부기록이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

과연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정규 직원들은 바빴을까. 사회보험청 직원노조가 1979∼2004년 사회보험청 측과 맺은 각종 각서를 보면 현실은 정반대였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각서에는 ‘45분간 입력하고 15분간 쉰다’는 조항만으로는 부족했던지 ‘하루에 5000타 이상은 입력하지 않는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었다. 5000타는 컴퓨터 자판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1시간 안에 끝마칠 수 있는 작업량이다.

각서의 내용이 일본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일본 국민은 사회보험청의 간부뿐 아니라 일반 직원에까지 만연한 도덕적 해이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사회보험청 노조의 이번 반성문은 일본 국민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연금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은 “(해결 노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업무 성과가 구체적인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공공 부문에서 ‘관리 감독의 해이’는 공무원 등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지기 쉽다. 이는 국정 전체를 한순간에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일본의 사례가 생생히 보여 준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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