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김기현]‘총학생회장=反美’ 오해 푼 韓-美청년 축구

  • 입력 2008년 2월 25일 02시 50분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주한 미8군 기지 내 운동장. 매서운 바람에 체감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졌지만 미군 병사들과 한국 청년들이 잔디 위를 달리며 축구 경기가 한창인 경기장은 열띤 분위기였다.

이날 용산 미군 기지를 찾은 한국 청년 30여 명은 ‘뜻밖에도’ 전국 70여 개 대학의 전현직 총학생회장 모임인 청년연대 회원들.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반미 운동’의 상징이었던 대학의 학생회장 출신 청년들이 주한미군의 ‘심장부’에 들어와서 미군 장병들과 축구를 하고 있는 모습은 왠지 낯설어 보였다.

경기를 마친 청년연대 회원들과 미군 장병들은 영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섞여 앉았다.

이미 축구장에서 몸을 부딪치며 함께 땀을 흘리고 난 후여서 어색하지도 않았다. 서투른 영어로 시작한 대화였지만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숙명여대 전 총학생회장 정유진 씨는 “서로 잘 소통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는데 막상 함께 땀을 흘리며 운동장을 뛰면서 금방 친숙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지난해 1월 청년연대가 미군 측에 제의해서 1년여 만에 이뤄졌다.

청년연대 대표 김성훈 씨는 “운동권이 주도해 온 대학가의 맹목적인 반미가 다수 학생의 감정이나 생각이 아니고, 우리는 미국이나 미군에게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겠다는 의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군 측은 처음 이런 제의를 받고 의아했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축구를 하러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오겠다는 데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눈치였다는 것.

이런 한미 간의 ‘작은 오해’부터 풀어나가면서 성사된 것이 이날의 ‘역사적인’ 축구 경기였다. 청년연대는 앞으로 미군과 봉사활동을 같이하고 대학 축제에도 미군 장병을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운동권 학생들의 비난이 있다면, 오히려 ‘반미’의 정당성을 주제로 토론을 해 보겠다는 의욕도 보였다.

정 씨는 “그동안 미군을 무조건 적대시해 온 학생운동권의 시각이 옳지 않고 주한미군이 한국의 현실에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이 모이면 대학가에서도 미국에 대한 감정적이고 이념적인 접근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이 자리하게 되지 않을까.

김기현 사회부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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