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상영]작은 구멍이 제방을…

  • 입력 2008년 2월 21일 03시 00분


별일 아니라며 지나칠 수 있지만 뭔가 찜찜하다. 일회성 해프닝으로 넘기자니 벌써 두 번째다. 작은 구멍이 제방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교훈이 떠오른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1명과 자문위원 8명을 포함한 30여 명이 단체로 강화도에 가서 인천시와 강화군의 향응을 받았다는 소식은 언뜻 그냥 넘길 수도 있는 내용이다. 약간의 악취가 나긴 하지만 이 정도는 참아줄 수 있을 정도로 더한 일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새 정부가 출범도 하지 않았으며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인수위원 향응 ‘부패의 기억’ 떠올려

차기 정부는 530여 만 표 차라는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정부조직 개편을 포함한 강력한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국민의 기대도 높다. 이때쯤 새 정부에 몸담을 사람이라면 분위기 때문에라도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는 게 정상이다. 닻을 올리지도 않은 정부의 관계자라며 떼를 지어 접대와 선물을 받았다면 일반인의 상식에 반한다. 혹시 이들의 의식구조 속에 ‘정권을 잡았으니 이 정도는…’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얼마 전에는 부동산컨설팅업체 대표를 맡고 있는 또 다른 자문위원이 30분에 50만 원이라는 고액의 상담료를 받고 투자자문에 응했다가 해임되면서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상담 중 새 정부의 부동산정책 방향까지 언급했다니까 인수위 자문위원이라는 직함이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다. 강화도 향응 회식이 단발성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걱정이 생기는 이유다.

인수위는 ‘예견된 사건’이라며 자문위원 명함을 남발한 데 대해 반성하기는 했다. 이명박 당선인도 사건이 터지기 하루 전 마치 미리 알기라도 한 듯이 “꼭 ‘백’ 써서 들어온 사람들이 사고 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백’ 써서 들어온 일개 ‘명함용’ 자문위원이 정권 출범 전에 향응을 받을 정도라면 청와대나 정부로 들어갈 사람들에게 미칠 유혹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권력 주변에는 항상 사리(私利)를 좇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가까운 고향 선후배, 학교 선후배가 축하의 뜻으로 밥 한 번 사겠다면서 접근한다. 그렇게 식사 몇 번 하고 함께 어울리다 보면 인간관계가 쌓이고 나중에 청탁이 들어왔을 때 거절하기 곤란한 어정쩡한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결고리가 정권 말기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터지는 것을 지금까지 숱하게 보았다. 한국적 풍토에서 공직자가 제대로 몸가짐을 가지면 친지나 친구로부터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더구나 지난번 대선까지 한나라당의 최대 약점은 부패 이미지였다. 이번 대선을 통해 많이 극복됐다고는 해도 국민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다. 강화도 향응은 자체로는 큰 사건이 아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한나라당의 기득권층 이미지에 부패 이미지가 다시 덧씌워질 수 있다. 10년 동안 정권을 잃었으니 권력의 단맛을 보려는 인사들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경제에 가려진 도덕불감증 경계를

또 하나 이명박 당선인은 ‘경제 살리기’를 국정의 최우선과제라고 여러 번 천명했다. 청와대와 예비내각에도 경제를 잘 아는 인사들이 포진했다. 경제논리로 무장하면 사안을 판단하는 최고의 기준은 효율성과 성과다. 이때 지나치게 효율과 성과만 추구하다 보면 자칫 도덕성에 대해 둔감해질 수 있다. 국민은 국정운영을 잘해 생활이 나아졌다고 해서 권력 주변의 일탈을 눈 감아 주지 않는다. 성과가 좋으면 다른 부분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기업과는 다르다.

시중에는 이미 당선인과의 인연을 가리키는 갖가지 말이 생겨나고 있다. 소망교회, 고려대, 영남을 뜻하는 ‘SKY’ ‘고소영’ 등의 조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떠돈다. 가까운 것들을 더 경계하라는 국민의 바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경제 살리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인수위에서 생긴 두 번의 ‘사고’를 보면서 초기에 권력 주변의 도덕성을 추슬러야 한다는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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