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경청(傾聽)의 힘

  • 입력 2008년 1월 29일 02시 59분


서울 강남의 어느 논술학원 원장에게서 들은 얘기다. 이 학원은 한 달간 수강생이 아무 말도 못하게 하는 규칙을 갖고 있다. 이유가 재미있다. 요즘 아이들이 듣는 힘이 부족해서란다. 아이들을 데리고 토론수업을 해보면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펴거나 남의 말을 자르고 끼어든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대화는 있지만 경청(傾聽)은 드물다. 세상의 부모들은 십대 자녀들이 어른이 하는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십대들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말을 무시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사람은 듣기를 지혜의 으뜸으로 쳤다.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많이 듣고 적게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말했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 같다. 오죽하면 공자도 40세 불혹(不惑), 50세 지천명(知天命) 다음에 60세를 이순(耳順)이라고 했을까. 미국 작가 올리버 홈스는 ‘말하는 것은 지식의 역할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지식보다 지혜를 얻기가 힘들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잘 듣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말을 제대로 듣는 훈련을 하지 않고 성인이 되면 이를 고치기가 어렵다. 듣기 능력이 떨어지면 학습 능력도 떨어진다. 당연히 성적이 좋을 리 없다. ‘강의 듣기’는 배움의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 대학교수는 학생들에게 특정 주제에 관해 리포트 과제를 내 주면 절반 이상이 엉뚱한 주제에 대해 써 온다고 말했다.

▷일본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공립고등학교 입시에 ‘국어 듣기’ 평가를 도입했다. ‘영어 듣기’ 평가처럼 방송이나 녹음기를 통해 예문을 들려주고 정학한 요지를 선택하게 하거나, 예문에 대한 생각을 기술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 듣기 교육을 강화하는 이유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자기주장을 펼 기회를 잡기에 바쁜 시사토론 프로그램 출연자들부터 먼저 경청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말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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