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해]미국호텔, 한국호텔

  • 입력 2008년 1월 29일 02시 59분


지난해 가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채플힐)에서 연수 중일 때의 일이다.

대학도시 채플힐에서 자동차로 4시간가량 떨어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조그만 도시 덩컨을 가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아이가 이곳에서 열린 YMCA 수영대회에 출전해 우리 가족 모두 응원을 하러 갔다. 추수감사절을 기념해 열린 수영대회는 3일 동안 계속됐다. 우리는 이틀 밤을 근처 호텔에서 지냈다. 호텔은 수영대회에 참가하는 학생과 동반 가족들로 붐볐다.

자그마한 호텔이었지만 깔끔하고 가족들이 지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별 3개짜리인 이 호텔의 하룻밤 숙박비가 89달러였다. 아침식사는 공짜였다. 셀프서비스이기는 했지만 토스트와 빵 우유 달걀 과일 커피 등 다양한 아침 메뉴가 준비돼 있었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 캐나다 퀘벡에서 묵은호텔은 예약 전문 인터넷사이트를 뒤져 찾았다. 성수기였지만 인터넷으로 예약한 덕분에 190달러짜리 별 3개짜리 호텔을 절반도 안 되는 70달러에 잡을 수 있었다. 미국에는 이처럼 남아도는 방을 그냥 놀리느니 인터넷으로 싼값에 예약할 수 있는 호텔이 꽤 있다.

여행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숙박시설도 한국과 비교하면 아주 다양한 편이다.

하루 40달러 선인 조그마한 인(Inn·여관)에서부터 대도시의 경우 수백 달러에 이르는 특급호텔까지 가격차는 천차만별이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더라도 차를 몰고 가다 날이 어두워져 쉬고 싶으면 호텔이나 인으로 들어가면 방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도심의 비싼 호텔이야 200달러를 훌쩍 넘지만 인터넷을 잘 이용하면 별 3개짜리 호텔을 70달러 안팎에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 호텔들은 어떤가. 지난해 영업실적이 워낙 안 좋아 실적을 드러내기가 두렵다는 얘기가 업계에 파다하다. 호텔 경영은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장경작 롯데호텔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강세로 일본 관광객들이 특급 호텔을 찾지 않고 중저가 호텔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에 출장 온 일본 비즈니스맨들조차도 특급 호텔 대신 중저가 비즈니스 호텔을 이용한다는 게 장 사장의 얘기다. 호텔업을 하고 있는 한 대기업 임원은 “객실이 잘 나가지를 않아 음식점 등 부대사업이나 임대사업에서 호텔 적자를 메우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여행을 떠나도 어지간히 큰맘 먹지 않고는 선뜻 호텔 문을 두드리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호텔들은 신규 투자는 엄두도 못 내고 이미 있는 객실마저 줄이기에 안간힘이다. 오죽하면 장 사장이 “지금 호텔들은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일까. 이런 사정은 롯데호텔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특급 호텔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롯데호텔은 내년 2월 서울 마포에 10만 원대 초반의 비즈니스 호텔(객실 수 284개) 문을 연다. 경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중저가 비즈니스 호텔로 눈을 돌린 것이다.

미국처럼 가족이 여행하면서 크게 가격 부담 없이 묵을 수 있는 호텔이 한국에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설을 맞아 국내 관광지는 한산한데 인천국제공항은 해외에 나가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관광 인프라스트럭처도 시원찮은데 호텔 값마저 외국보다 훨씬 비싸다면 누가 한국을 찾을까.

최영해 산업부 차장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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