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막힌 곳 확 뚫으면 다시 기적이 가능하다

  • 입력 2008년 1월 22일 22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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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관료와 기업은 전형적인 갑(甲)과 을(乙)의 관계다. 그리고 이 불평등 구조를 지탱하는 힘은 바로 ‘정책권력’이 틀어쥔 기업 규제에서 나온다. 기업인들은 “규제가 곧 공무원들의 밥줄이고, 민간을 옭아매는 권세의 원천”이라고 지적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오래하면서 관료들이 휘두르는 규제의 폐해를 뼈저리게 겪었다고 토로했다.

이 당선인은 어제 매일경제신문의 ‘비전 코리아’ 행사에 참석해 공직사회를 향해 “이 시대에 걸림돌이 될 정도의 위험 수위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길만 터주면 참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용케 길목은 다 막아 놨다”고 기업 규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규제로 인한 사회적 낭비와 기업의 불편에 대해 품었던 평소 생각을 솔직하게 밝힌 것이다.

도장 1000개 틀어쥔 비대 관료조직

한 기업인은 최근 사석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료사회의 몸집이 붇기만 했지 한 번도 줄어본 적이 없다. 이번이야말로 비대한 정부를 확 줄일 기회”라고 말했다. 규제 대상자인 을의 관점에서 갑을 개혁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 관료사회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이 당선인은 “어느 부서는 산하 기업의 경영인들을 동원해 인수위원을 찾아다니며 자기 부처 없애지 말라고 로비를 하는 낡은 수법을 쓴다”고 질타했다.

정부가 이곳저곳에 박힌 ‘전봇대 규제’만 뽑아줘도 제조업이 해외로 탈출하는 현상은 줄어들 것이라고 재계는 호소한다. 대기업 P 회장은 세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조선 철강 공작기계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도 정부가 뒷다리만 잡지 않으면 족히 10∼20년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요즘 자동화 공장에 가보면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일자리가 제조업보다 3차산업에서 더 많이 만들어지는 시대다. 한 기업인은 “18홀짜리 골프장 하나만 만들어도 일자리 200개가 생긴다. 그런데 골프장을 완공하기까지 지금도 도장을 1000개는 받아야 한다”고 규제 공화국의 현실을 고발했다. 근본적으로 공직사회를 축소하는 대수술을 하지 않으면 도장 1000개는 줄어들지 않는다.

민간과 대학의 자율이 최대의 成長動力

의료와 교육도 산업으로 보고 규제를 확 풀어줄 필요가 있다. 우리의 고급 의료 인력을 활용하면 세계 여유 계층을 대상으로 한 고수익 영리 병원법인을 못 만들 이유가 없다. 명색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세계 200대 대학 순위에 들어간 대학이 서울대(51위)와 KAIST(132위) 2개뿐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인재를 선발해 범재(凡材)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노무현 정부는 5년 동안 대학입시 규제를 틀어쥐고 대학을 하향평준화하는 작업에 골몰했다. 2008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일대 혼란을 몰고 온 수능 등급제 파동도 노 정부의 평준화 코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제 인수위가 발표한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은 40여 년 만에 정부가 대학입시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입 통제에서 대입 자율로 일대 전환을 하는 시대사적 의미가 크다. 대학은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이다. 대학 규제를 풀어야 세계적 대학이 여럿 나올 수 있다.

규제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고, 관료조직은 규제의 산실(産室)이다. 이 당선인은 흔들림 없이 초심(初心)을 유지해 정부조직과 규제의 획기적 축소를 완결해야 한다. 그는 “한 달 동안 제가 국정을 샅샅이 살펴보니, 이렇게 막히는 곳이 많은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참 기적”이라고 말했다. 막힌 곳을 확 뚫으면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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