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공은 기업으로 넘어왔다

  • 입력 2008년 1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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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정유 4사가 기름값을 담합했다고 발표했다. 모두 526억 원의 과징금을 물리고 검찰 고발도 했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공정위의 일방적 발표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해당 기업들을 비판했다. 정유업계가 담합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지만 양측의 주장을 균형 있게 보도한 곳은 동아일보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당시 79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에쓰오일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 판결이 이달 16일 나왔다. 서울고법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 결정이 잘못됐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다른 3개 정유사가 낸 소송도 진행 중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실세(實勢) 시민단체’였던 참여연대는 2006년 4월 신세계 전현직 임원 3명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단체는 광주신세계의 유상증자 과정을 문제 삼으며 신세계를 공격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7일 해당 임원들에게 모두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두 사건은 그동안 기승을 부린 ‘잘못된 기업 때리기’의 한 예다. 행정 권력과 일부 친여(親與) 단체, 상당수 언론이 모두 공범이었다.

에쓰오일과 신세계의 법적 명예는 일단 회복됐다. 그러나 잘못된 발표에 따른 기업이미지 추락 등 유무형의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공정위와 참여연대의 주장이 오발탄(誤發彈)이었음을 보여 준 법원과 검찰의 결론은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상 ‘그늘’이 존재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명백히 잘못하면 기업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충분한 검증이 안 된 내용이라도 대기업이라면 속말로 무조건 ‘조져도’ 되고, 이 과정에서 왜곡과 과장을 서슴지 않는 행위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코드 맞는 정권을 뒤에 업고 기업을 압박하면서 뒷거래를 통해 챙길 것은 다 챙긴 이중성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온갖 좋은 단어는 써 먹었으니 설득력을 지닐 리 없다. ‘아니면 말고’ 식의 한건주의가 끼친 해악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도 적지 않다.

이번 정권 교체는 정교한 노력은 소홀히 하면서도 목소리만 크면 통했던 ‘신종(新種) 야만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경제계가 새 정부를 환영하는 것은 과거 개발시대의 특혜를 기대해서가 아니다. 최소한 얼치기 좌파정권처럼 시달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적지 않다.

세상의 변화는 재계에 새로운 책임도 요구한다. 기업 친화적 정부의 출범으로 더는 정부 탓을 하기 어렵다. 투자나 고용 측면에서 경제계의 사회적 책임은 한층 커졌다. 반(反)기업 분위기가 득세하던 시절 권력에 대한 약자(弱者)라는 이유로 때로 누렸던 ‘호의적 외면’도 가능한 한 잊는 게 좋다.

정부가 기업을 이해한다는 신뢰감은 경영에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이를 믿고 과욕을 부리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의 을(乙)’인 하청업체에 대한 부당한 요구나 소비자 권익 침해에 대한 감시의 눈은 훨씬 날카로워질 게 틀림없다.

친(親)기업 정부의 출범은 정부와 재계 관계에 많은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기업과 국가의 동반 발전을 위해 서로 협조하되 ‘오버’ 하지 않고 각자 역할에 충실할 때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가능하다. 이제 공은 기업으로 넘어왔다.

권순활 산업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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