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인휘]제대로 된 싱크탱크 가질 때 됐다

  • 입력 2008년 1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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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는 정책결정 집단과 일반 대중 사이의 책임성을 높여 주기 위해 ‘국민의 행복’과 ‘국가정책 결정’ 사이의 균형과 조정을 담당하면서 유력한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상시 전문가’ 집단을 의미한다. 하룻밤이면 모든 종류의 지식과 제도의 복사가 가능하다고 알려진 세계화 시대인데도 유독 우리에게 싱크탱크의 정착은 쉽지 않다. 19세기 말 이후 국가경영(statecraft)의 외연 확장을 계기로 ‘준비된 전문가’ 집단의 출현은 예고되었다.

국가경영의 동반자 역할 못해

지금 우리가 벤치마킹하는 싱크탱크의 기능과 역할은 대체로 1970년대 이후 미국 정치의 개혁을 주도한 미 의회 신진세력의 출현과 활동을 전제로 한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각종 선거가 치러지고, 전문가 집단 간 정책경쟁이 가열되면서 정치세력 간 정책경쟁의 상시화 시대를 맞게 됐다.

‘시장’과 ‘마케팅’을 전제로 한 미국식 싱크탱크의 역할은 국가운영과정에서 이미 정치적 상수가 됐고 미국식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최근에는 싱크탱크의 역할이 국가정책개발의 효율성 제고라는 차원을 넘어 세계화 시대를 견인하는 글로벌 사회의 새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세계 유력 싱크탱크는 정부를 대신해 정보를 교환하고 지식을 공유함은 물론 인권, 안보, 교육, 환경 등 초국가적 이슈에 대해 경쟁적으로 대안을 내놓아 글로벌 사회의 규범과 규칙을 제시하는 새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네오콘의 대외정책 수립에 관련한 미국기업연구소(AEI)나 고등교육 개혁을 추진한 유럽연합(EU) ‘에라스무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각종 유럽 연구기관의 활약은 물론이고, 이제 세계 시민들은 아시아 외교문제를 손쉽게 탐문하는 방법으로서 일본국제문제연구소(JIIA)의 웹사이트를 가장 먼저 방문한다. 한마디로 싱크탱크들 간 글로벌 네트워크가 생겨나고 있다. 국가경영과 관련해 유력한 행위자로 등장해야 하는 과제조차 달성하지 못한 우리는 또다시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토종 싱크탱크의 전설은 남아 있다. 국가와 과도하게 결합돼 있다는 지적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KIET) 같은 미국식 싱크탱크를 대신한 국책연구소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성장신화는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화 20년의 역사를 경험했고 그만큼 국가운영 방식의 근간이 바뀌었다. 민주화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지금 선진화라는 새 고지를 향해 핵심과제를 선별하고, 상비 정책개발자들을 통해 사회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정책들을 생산하도록 해야 한다.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활용 가능한 지식(usable knowledge)과 정책 판단의 토대가 되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발굴해 적용 가능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결국 이런 과제들은 사적(私的) 싱크탱크의 몫으로 고스란히 넘어온다.

세계화 선진화 이끌 연구기관 필요

만약 의사(擬似)-싱크탱크라는 카테고리가 있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범람하고 있는 각종 싱크탱크연(然)하는 기관은 대부분 여기에 포함된다. 어설픈 정책보고서 양산을 싱크탱크로 인식하는 관련 종사자들의 안이한 인식과 무턱대고 미국의 성공담을 답습하는 국적 없는 전문가 정신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는 ‘3차산업’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정치는 국민이라는 고객에게 좀 더 양질의 정책을 제공하고, 정책경쟁이라는 시장에서 승리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우리도 하루빨리 세계 유수의 싱크탱크와 경쟁할 수 있는 견고한 정책연구기관을 가졌으면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이제 선진화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경쟁력 향상은 건강하고 유능한 한국적 싱크탱크의 어깨 위에 올려졌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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