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임기보장 원칙에 대한 盧대통령의 잣대

  • 입력 2008년 1월 17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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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적으로 임기직은 법령상 정한 임기를 지키도록 해 주는 게 바람직하다. 참여정부는 임기 보장 원칙을 준수하려 노력했으며, 특별한 사유 없이 임기 도중에 교체한 사례는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15일 국무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향해 현 정부에서 임명한 임기제 정무직 전원에 대한 임기 보장을 대놓고 요구한 셈이다.

중앙인사위원회는 이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정권 출범 뒤 3개월 이내에 임기제 고위직이 교체된 비율은 각각 56%, 45%, 15%라고 보고했다. 참석자들에게는 역대 정부에서의 임기제 변동 추이, 외국 사례와 전문가 의견을 정리한 10쪽짜리 문건도 배포했다. 인사위의 보고는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천호선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하지만 5년 전인 2003년 3월.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의 사퇴(6일)를 시작으로 김각영 검찰총장(9일),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13일)이 줄줄이 물러났다. 노 대통령 취임 후 한 달도 안 돼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주요 정무직이 ‘정리’된 셈이다.

“참여정부는 임기제 정무직의 사퇴를 강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천 수석의 10일 정례 브리핑처럼 세 사람 모두 자진사퇴 형식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김 전 총장은 2003년 3월 9일 TV로 생중계된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노 대통령이 “현 검찰 상층부를 믿을 수 없다”며 김 전 총장에게 ‘공개 불신임’을 통고하자 “인사권을 통해 검찰권을 통제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확인됐다”며 사표를 냈다. 나머지 두 사람도 “적임자 물색 중” 등을 흘리는 ‘청와대의 흔들기’를 이기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임기제 정무직의 임기는 보장되는 것이 옳다. 노 대통령에게 보고된 문건에 적힌 것처럼 정부 교체 시 임기제 직위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업무 연속성이 저해될 위험성이 크다. 특히 검찰총장처럼 법률이 정한 임기가 존중되지 않는다면 법치주의에도 위배된다.

하지만 이 정부도 지키지 못한 원칙을 차기 정부에 강요하는 듯한 모습은 설득력이 없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생각 못한다는 속담처럼.

조수진 정치부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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