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에 비친 2007년]세상애환 담아낸 600字 ‘인간극장’

  • 입력 2007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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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새해 첫날의 휴지통은 젊은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는 취업난을 전했다. 초임 100만 원대의 검찰 관용차를 운전하는 10급 기능직 공무원 공채에 서울 소재 대학 석사학위 소지자 등 고학력자가 대거 몰려 20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자리는 비단 젊은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휴지통에는 외환위기 이후 10년째, ‘평생직장’이 사라진 사회상도 담겼다.

매달 20만 원의 활동수당과 고등학생 자녀 학비 전액이 지원되는 통장 공모에 대학교수, 고위 공무원 등 전현직 사회 저명인사들이 우르르 지원했고(5월 5일자), 나이와 학력 제한을 없앤 부산교통공사 직원 공채에는 53세 지원자를 포함해 40, 50대 지원자가 70명 가까이 몰렸다(7월 30일자).

주가지수 2,000시대가 열렸지만 오랜 불경기를 겪어온 자영업자들 사이엔 경쟁 업체를 골탕 먹이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한 통닭집 사장은 동네에 통닭집이 늘어 장사가 안 되자 인근 통닭가게 2곳에 각각 20, 18마리의 통닭을 허위 주문했고 (1월 30일자), 한 신설 입시학원 부원장은 학생 유치가 어렵자 인근 학원 홈페이지에 음란 동영상을 무더기로 올려놓아 경찰에 붙잡혔다(4월 25일자).

국민에게 희망을 안긴 소식은 지난해보다 늘어난 신생아 울음소리였다. ‘황금돼지띠’해 속설에 힘입어 출산율을 높이려는 지방자치단체의 경쟁적인 노력도 휴지통에 잡혔다.

‘셋째 낳으면 100만 원, 열째는 3000만 원’을 약속한 서울 중구(2월 14일자), ‘셋째 낳으면 5년간 민간 건강보험 혜택’을 내건 광주 남구(5월 12일자), 전북 익산시는 실제 세쌍둥이를 낳은 부부에게 출산장려금 1500만 원을 안겼다(11월 24일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 이후 빗나간 부정(父情)을 보여 주는 사건도 이어졌다.

아들이 동급생에게 얻어맞았다며 가스총을 쏴 교사를 위협한 아버지(6월 1일자), 아들에게 돈을 빼앗은 중학생을 불러내 때리고 PT체조를 시킨 아버지(7월 14일자), 한 아버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10초만 시간을 더 달라”는 재수생 아들의 답안지를 뺏어간 감독관을 폭행하기도 했다(11월 22일자).

‘신정아 사건’으로 촉발돼 도미노처럼 사회 곳곳으로 번진 학력 위조 파문도 휴지통에 반영됐다.

위조한 학위를 이용해 국내에서 영어학원 강사로 취업한 캐나다인은 ‘한국 사교육 현장을 교란한 책임’으로 실형을 선고받았으며(7월 16일자), 약혼녀에게 잘 보이려고 가짜 대학 졸업증명서를 만든 30대 남성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8월 31일자).

유난히 거짓말이 난무하는 올 한 해 국민을 가장 괴롭혔던 범죄는 보이스 피싱(전화 사기)으로 그 수법도 나날이 ‘진화’했다.

은행 콜센터 직원을 사칭해 “신용카드가 도용됐다”며 차례로 경찰과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전화를 연결하는 것처럼 속여 전화받는 이의 정신을 쏙 빼놓고 통장 잔액을 빼가는가 하면(1월 11일자), “보이스 피싱을 막아 주겠다”고 접근해 보안장치 번호를 누르라고 한 뒤 돈을 가로채기도 했다(6월 22일자).

정책 대결과 검증이 실종된 17대 대통령 선거로 인한 해프닝도 있었다.

‘유엔본부 판문점 이전’, ‘신혼부부에게 1억 원 지급’, ‘산삼 뉴딜 정책 시행’ 등 이색적인 공약을 내건 경제공화당 허경영 대선 후보에게 누리꾼들의 ‘묻지 마’ 관심이 쏟아졌는가 하면(12월 14일자), 대선이 끝난 뒤까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교육정책 공약이라며 ‘수능 한 해 2번 실시’, ‘놀토 폐지’ ‘두발 자유화 폐지’ 등 ‘헛 공약’이 떠돌아 누리꾼들의 문의가 한나라당에 쇄도하기도 했다(12월 25일자).

사건 사고로 몸살을 앓은 사회는 소시민들의 ‘결초보은(結草報恩)’이 어루만졌다.

한 80대 할머니는 119 구급대원 사무실로 찾아가 “7년 전 노환으로 쓰러진 나를 살려 줘 고맙다”며 네잎클로버 2개씩을 넣어 만든 서표 100장을 전달했고(1월 12일자), 한 70대 할머니는 “35년 전 형편이 어려워 아들 병원비 20만 원을 내지 않고 도망갔다. 이제야 갚는다”며 35만 원이 든 봉투를 병원에 건네 독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1월 15일자).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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