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기권의 사회학

  • 입력 2007년 12월 2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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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이 62.9%(잠정 집계)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직선제 이후 대선 투표율은 1987년 13대 때 89.2%로 최고를 기록한 뒤 14대 81.9%, 15대 80.7%, 16대 70.8%로 계속 하락하다가 이번엔 60%대에 턱걸이했다. 기권도 정당한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기권자가 많을수록 의사 선택 과정이 왜곡돼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역설이 생기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기권은 ‘합리적 무시’에 해당한다. 투표 참가라는 비용에 비해 투표 행위로 인해 세상이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 편익이 적을 경우 기권(무시)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합리적 무시는 단결된 소수의 전횡을 부른다. 이는 이익단체에 의한 지배를 가져와 결국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개인에게는 기권이 합리적 선택이지만 집적되면 비합리적 결과를 낳는 ‘구성의 오류’가 발생한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기권방지에 노력을 기울인다. 그중 하나가 강제 투표 시스템이다. 유권자는 모두 투표를 해야 하고 투표를 하지 않을 경우 벌금이나 구류에 처해진다. 호주 벨기에 브라질 등 32개국이 강제 투표를 채택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일부 연령대는 강제 투표를, 일부 연령대는 자유투표를 한다. 예전에 러시아에선 표기된 후보자 이름 외에 ‘지지 후보 없음(None of the Above)’ 난이 있었다.

▷기권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생업에 바빠 투표를 할 수 없는 생계형 기권이다. 둘째는 의도적 기권이다. 후보들의 성향이 비슷비슷해 차별성이 없거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심한 경우 투표를 안 하는 것이다. 셋째는 정치적 무관심에 따른 기권이다. 선진국일수록 기권율이 높기는 하지만 이번에 투표율이 떨어진 데는 여론조사 기법의 발달로 결과가 뻔하게 예측되는 데다 네거티브 공방으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진 탓일 터이다. 정치권은 낮은 투표율에 담긴 민의도 읽어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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