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코리아 브랜드 까먹는 ‘악당 북한’

  • 입력 2007년 12월 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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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에서는 ‘바이오닉 우먼’이라는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1970년대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머즈’의 리메이크판으로, 초능력을 갖춘 여자 공작원이 악당을 무찌르는 내용이다.

‘소머즈’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다가 한국계 영화배우인 윌 윤 리(32) 씨가 여주인공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멋진 특수요원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기자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가족과 함께 이 드라마를 보곤 한다.

그런데 지난주 드라마에는 특히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갑자기 ‘북한’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이다. 이 편에서 여주인공 소머즈는 북한에 미국 핵 기술을 몰래 판매하려던 악당을 처리해야 했다. TV를 함께 보던 딸들이 “또 북한이야”라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 TV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북한이 ‘악의 축’으로 등장한 것은 물론 처음이 아니다. 올해 할리우드 최대 흥행작 중 하나인 ‘트랜스포머’에서는 중동 지역에 주둔 중인 미군 막사가 정체불명의 로봇에 초토화되자 펜타곤에 모인 미 당국자들이 “이런 짓을 할 나라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밖에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 영화에서 북한은 몇 차례나 테러국으로 묘사됐다.

액션 배우 반 디젤이 과학자의 자녀들을 보호하는 역할로 등장하는 디즈니 가족 영화 ‘패시파이어’에서도 과학자의 이웃집에 사는 아시아계 부부가 핵 기술을 빼내려 시도하는 북한 출신으로 그려졌다.

선악 구도가 분명한 할리우드 영화는 ‘악당’이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독일이, 냉전 시대에는 소련이, 이후에는 아랍계 테러리스트가 그런 악당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북한이 그런 악당의 1순위가 되고 있다.

문제는 할리우드식 이분법의 단순함을 탓하기에 앞서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점이다. 할리우드가 북한을 악당으로 빈번하게 묘사할수록 미국인뿐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를 즐기는 전 세계 사람들의 의식 속에 ‘코리안=악당’의 이미지가 각인되기 마련이다.

요즘 미국에선 한국 기업들의 노력으로 ‘코리아 브랜드’의 가치가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어렵게 개선한 코리아 브랜드를 북한이 까먹고 있다는 데 생각에 미치면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공종식 뉴욕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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