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특별검사 고르기

  • 입력 2007년 11월 30일 20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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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제도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유래됐다. 18대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이 자기 개인비서의 탈세 혐의를 수사하라고 특검을 임명한 것이 효시다. 제도로 본격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대통령 때다. 닉슨은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의 성역 없는 수사를 약속했다가 오히려 자신이 임명한 특검에게 덜미를 잡혀 사임하는 비운을 맞았다.

▷1990년대 들어 미국에선 특검제도에 대한 반성이 일었다. 무소불위의 권한과 무제한의 수사기간 및 예산, 특히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특검제가 비판받은 중심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성(性)추문 사건을 수사했던 케네스 스타 검사가 있었다. 보수파인 그는 사사건건 클린턴을 물고 늘어졌고 성추문 수사 하나에만 400억 원을 썼다. 클린턴 행정부는 무려 7건의 특검 수사를 받았다.

▷특검법 탄생의 산파였던 미국변호사협회(ABA)가 다시 이 법의 폐지를 의회에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법은 1999년 폐지되고 이제 법무장관이 임면권을 가진, 약화된 특검제만 남아 있다. 미국의 기존 특검제가 없어지던 해 우리는 거꾸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첫해 옷로비 사건과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에 이어 2001년 이용호 게이트, 2003년 대북 비밀송금 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사건, 2005년 러시아 유전개발 사건 등의 의혹을 특검이 수사했다. 그러나 측근 비리와 유전개발 의혹 수사는 성과 없이 끝났다.

▷올해 말 이전에 삼성비자금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가 시작된다. 수사 대상이 워낙 광범위해 법에 정한 105일(1, 2차 연장 포함) 이내에 끝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렇다고 특검이 요술방망이처럼 뭔가 ‘물건’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지배를 받아서도 곤란하다. 이래저래 경륜 있고 국민이 신뢰할 만한 특별검사가 필요하다. 법조계에서는 전 검찰총장 L, K 씨와 대검중앙수사부장을 지낸 S 씨 등이 거론된다. 대한변협의 후보 3명 추천과 대통령의 낙점부터가 공명정대해야 한다. 운동권 시민단체 등의 입김에 휘둘릴 일은 아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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