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 진]에이즈보다 무서운 ‘에이즈 편견’

  • 입력 2007년 11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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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올해로 벌써 20회를 맞는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전하고 편견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에이즈감염인협회도 에이즈 감염인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 다 함께 살아가자는 내용으로 거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TV에서 ‘제 친구는 에이즈 감염인입니다’라는 공익광고가 방영되고 있다. 감염인을 편견 없이 친구로 대하는 광고 속 장면은 우리 감염인의 꿈을 그대로 표현한 듯하다. 에이즈와 감염인을 향한 편견이 사라지는 것이 감염인 대부분의 절실한 바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다. 감염인인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감수하더라도 주변 사람에게까지 미칠 충격과 여파를 생각하면 감염인임을 떳떳이 밝힐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에이즈에 대한 뉴스와 캠페인이 난무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에이즈에 대한 편견의 벽은 너무 높고 견고하다.

반면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에이즈 감염인도 당당한 사회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최고의 농구스타 매직 존슨은 에이즈 홍보대사로서 미국 각지에서 강연과 방송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 올해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의 선임고문이 돼 ‘HIV 감염자들의 사회 참여 확대’ 분야를 맡고 있는 케이트 톰슨이라는 여성도 에이즈 감염인이라고 한다. 그 사회에서는 에이즈가 단지 하나의 질병일 뿐 타인에게 죽음을 옮기는 전염체도 자기 안의 감옥에 수감되어야 할 범죄자도 아니다.

한국에 에이즈 감염인이 발생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 그간 약물 개발로 에이즈는 치료 가능하고 꾸준한 관리를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질환이 됐다. 그러나 지금도 에이즈에 대한 무지로 차별과 편견은 20년째 그 자리에 멈춰 감염인을 옭아매고 있다. 결국 에이즈가 아니라 에이즈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자괴감 때문에 쓸쓸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누적 에이즈 감염인 3657명 중 705명이 자살해 에이즈 감염인의 자살률이 일반인의 10배에 이른다.

다행히 드라마나 캠페인 등을 통해 에이즈는 쉽게 공기 중이나 접촉으로 감염되지 않으며 특정인만 걸리는 질환이 아님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 그러나 이 역시 일회성에 그치는 것 같아 조급증이 생긴다. 그간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전염, 격리, 통제와 같은 부정적 인식이 개선될 여지가 또다시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9월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에이즈 누적 감염인은 5000명을 넘어섰다. 실제 감염 사실을 모르는 사람까지 감안하면 그 3∼10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현실에서 무조건 예방, 에이즈 감염인과의 분리만을 강조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은 없다. 맹목적인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에이즈를 이해할 때 에이즈의 위험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 결국 정부 정책이나 미디어가 반짝 일회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앞으로 20년 이후를 내다보며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한 사회 울타리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에이즈를 함께 알아갈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이런 활발한 논의와 노력 끝에 감염인이 자신만의 동굴에서 벗어나 동료와 술잔을 기울이고 가족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길 고대한다.

김 진 한국에이즈감염인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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