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환]‘공동어로수역’의 덫

  • 입력 2007년 11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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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기로 합의했다. 남북 총리는 공동어로 사업을 내년에 착수하기로 6일 합의했다. 이어 27∼29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공동어로수역 설정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NLL 무력화 위한 전초전

그동안 현 정부에서 군 수뇌를 지낸 예비역 장성을 비롯해 우국충정의 뜻을 가진 많은 인사가 집회와 언론 기고를 통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결코 양보해선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NLL 흔들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북한의 도발 저의를 무시한 채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닌 ‘안보 개념’이라거나, 헌법의 영토 조항에 위배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이들을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1999년 6월 발발한 연평해전과 2002년 6월 발발한 서해교전이 과연 우발적 충돌이었는가? 우발적 충돌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진 지 오래다. 두 교전은 북한 군부가 고도로 계산한 의도적인 도발에 대해 우리 해군이 정당하게 영토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꽃다운 장병이 희생된 ‘해상에서의 뼈아픈 국경 충돌’ 사건이었다.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이 한 치도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는 것은 명백한 ‘NLL 무실화(無實化)’의 전초전으로 북한의 또 다른 대남 도발과 남북 군사 충돌을 예고한다. 왜냐하면 북한 상선은 물론 공동어로수역 내에서 어로활동을 할 북한 어선의 상당수가 위장된 북한의 현역 해군이기 때문이다.

2001년 6월 당시 북한 상선 3척이 우리 영해를 무단으로 침범해 제주해협을 통과하고, 이 중 청진2호는 NLL 무실화를 주장하면서 NLL을 통과해 해주항으로 입항했다. 지난달 말 아프리카 동부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근해에서 현지 해적을 물리쳤다는 북한 상선 대홍단호도 2001년 6월 우리 영해를 침범하고 동해로 북상했던 전례를 보면 이들은 결코 평범한 민간 선박이나 선원이 아니다.

북한 해운성 소속의 선박이나 선원은 상당수가 현역 해군이거나 경무장된 선박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남측 어선과 무장한 북한 해군 선박이 함께 어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또 다른 의도적 도발과 그에 따른 희생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두 차례의 교전에서 보듯 북한은 적반하장으로 NLL 무실화를 위한 또 다른 요구를 해 올 것이다.

‘무장 北어선’ 통제 불가능

국방부는 NLL 부근에 공동어로수역이 설정되더라도 어로수역 내 통제는 비군사적 수단으로 가능하다는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이는 위험천만한 발언이다. 북한 어민으로 위장한 무장된 북한 해군과 선량한 우리 어민의 충돌을 어떻게 비군사적 수단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인가?

또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NLL이 북측 해안선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등거리 원칙을 지키기 힘들 것이라는 정부 일각의 주장은 사실상 NLL을 재설정하겠다는 뜻과 다름없는 것으로 보인다.

NLL은 유지하되 이른바 유연성을 발휘해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겠다는 정부의 눈가림식 NLL 정책에 대해 국민과 장병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공동어로수역 설정 합의가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NLL 무실화의 전초전이 되지 않도록 국민적 합의가 담긴 남북 국방장관 회담의 결과를 기대해 본다.

김종환 전 합참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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