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혜승]보이스 피싱, 이젠 기업까지 협박

  • 입력 2007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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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편물 발송업체를 운영하는 50대 오모 씨는 최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오 씨는 규모는 작지만 내실 있게 꾸려 온 회사가 ‘보이스 피싱’(전화 사기)으로 휘청거릴 지경이 됐다며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달 초부터 오 씨의 회사에는 하루 200여 통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모두 “대법원 담당자라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환급금을 준다고 했는데, 거기가 어디기에 이런 전화를 했느냐”는 내용의 항의 전화다.

전화 사기단이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는 의구심을 갖는 응답자들에게 자신의 회사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을 오 씨가 알았을 때는 이미 전화 공세에 회사 업무가 마비된 뒤였다. 오 씨는 부랴부랴 경찰과 대검찰청, 정보통신부 등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모든 기관에 신고를 했지만 돌아온 것은 ‘방법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사기단을 잡는 것을 포기한 오 씨는 궁여지책으로 회사 대표 전화에 연결음 대신 ‘전화 사기를 주의하라’는 안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오 씨를 더욱 놀라게 한 전화가 걸려 왔다.

오 씨를 괴롭히고 있는 전화 사기를 자신이 했다고 밝힌 남성은 대뜸 “좋게 해결하자”며 “더는 그런 전화 안 받으려면 돈을 내라”고 협박까지 했다. 오 씨는 “협박에 넘어갈 수가 없어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곤 전화를 끊었는데 역시 항의 전화가 계속 걸려 와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 피싱 사례가 처음 보고된 지난해 6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접수된 피해 건수만 4564건, 피해금액은 445억 원에 이른다.

피해 건수가 늘어나며 개인에 머물던 피해 대상이 기업체들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관계 기관의 대응은 여전히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 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한 대응은 관할 지구대원들이 오 씨의 사무실을 한 차례 둘러보고 간 것이 전부다.

“보이스 피싱은 중국 등에 근거지를 둔 국제 사기일 경우가 많아 수사가 어렵다”는 경찰의 해명은 언제 바뀔 수 있을까.

강혜승 사회부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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