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보아]번듯한 박물관 반듯한 예절

  • 입력 2007년 11월 1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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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진행을 맡은 박물관 프로젝트를 위해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를 오갔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여장을 풀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예전에 오랫동안 인턴생활을 했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이 닥친 날이었는데도 문을 열자마자 관람객이 밀려 들어와 순식간에 박물관 전체를 가득 채웠다. 관람객들은 안내 데스크 앞에 줄을 서서 차례대로 필요한 정보를 구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마다 다양한 언어의 대화가 들렸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이 절반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박물관 전문가가 아니라 관람객의 편안한 시각으로 관람 삼매경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다 문득 근처에서 박물관 관람을 즐기고 있는 한 가족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들은 이 박물관을 자주 관람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관람 예절을 주지시키는 부모의 태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잠시 멈춘 틈을 타 넌지시 말을 건네 보았다. 부모가 박물관이나 문화재 보존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들은 평범한 샐러리맨 부부였다. 그들은 “박물관 관람 자체가 생활의 일부이며 어렸을 때부터 습득한 관람 예절과 문화적 소양을 자녀에게도 전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다음 달엔 파리에 갔다. 그런데 루브르 박물관에서 차마 웃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 앞에서 한국인 관광객 몇 명이 무려 18분 동안이나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문화를 향유할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꼴이 될 것 같아 쓴소리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관람 시간 내내 드농관, 리슐리외관, 쉴리관 등 박물관 곳곳에서 마치 사전에 담합이라도 한 듯이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와 비슷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심지어 조각상을 손으로 만지다가 안전 요원에게 면박을 당하는 모습도 보였다.

문득 어디선가 “나 화장실 갔다 올 테니까 거기에 꼼짝 말고 있어”라는 아주머니의 한국어 외침도 들려왔다. 밀로의 비너스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해프닝을 바라보던 이탈리아 관광객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데 저런 행동을 하느냐”고 수군거리면서 바로 곁에 서 있던 동양인인 나를 흘낏흘낏 쳐다봤다.

박물관에는 마침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많았다. 일본인과 비교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자존심 상하지만 외견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 두 나라 국민의 박물관 관람 문화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일본인 관람객들도 동반한 사람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이들의 속삭이는 목소리는 주변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박물관은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그곳을 방문한 관람객 역시 출신 국가의 문화 수준을 대변하는 지표가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한 직후 국내 관람객들의 무분별한 관람 예절이 언론을 통해 많이 보도되면서 점차 그런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박물관 관람 질서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박물관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박물관을 이용하는 소비자, 즉 관람객들의 관심과 호응이 절실하다. 개인의 노력이 없이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문화 강국’은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유산이나 콘텐츠, 문화 관련 정책의 우수함만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 개개인의 삶 속에 스며 있는 정서가 높은 문화적 향기로 발산돼야 비로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보아 추계예술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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