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연욱]‘떡값’의 진실

  • 입력 2007년 11월 1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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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던 ‘떡값 검사’ 명단이라는 판도라 상자가 일부 열렸다.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12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통해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와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이귀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 전·현직 검찰 수뇌부 3명을 ‘떡값 검사’로 지목했다.

13일 임 내정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일부 법제사법위원이 “사퇴 용의가 없나”라고 몰아붙이자 그는 “근거가 없는 주장에 사퇴한다면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받아쳤다.

이런 점에서 김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 사건의 ‘공론화’에는 일단 성공한 듯하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민주노동당 권영길,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선 후보는 이날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 도입에 합의했다.

김 변호사가 과거 삼성에서 7년간 재직하면서 100억 원 정도 받았다느니, 그의 전 부인이 8, 9월 삼성에 ‘협박성’ 편지를 보냈다느니 하는 문제는 그의 말대로 ‘곁가지’일 수 있다.

하지만 ‘떡값’의 실체와 관련한 김 변호사의 발언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공인인 검찰 수뇌부라고 해서 뚜렷한 근거가 없는 폭로로 명예가 훼손돼선 안 된다.

먼저 임 내정자가 2001년부터 삼성의 관리 대상에 포함됐다는 사제단의 주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검찰은 임 내정자가 관리 대상이 된 계기가 석연치 않다고 한다. 그가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부임하기 1년 전인 2000년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입 사건은 3차장 산하로 재배당됐다는 것.

사제단이 12일 공개한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관련 문건도 마찬가지다. 사제단은 “이 전무의 불법적인 재산 증식 과정을 보여 주는 자료로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2000년 작성됐다”고 했으나 삼성은 “에버랜드 사건 기소를 앞둔 2003년 10월 수사 내용을 정리한 변론자료”라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가 ‘떡값’을 건넸다는 정황 설명에 대해서도 논란이 인다. 김 변호사는 “돈이 건네졌다”고 강조했지만 돈을 건넨 시점과 장소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

그는 돈을 건넨 당사자가 아니다. 임 내정자와 이 위원장에 대해선 ‘삼성의 관리 대상’이라는 점만 강조했을 뿐이다. ‘떡값’을 주고, 받았다고 지목된 당사자들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뇌물수수 사건에서 당사자들이 부인하면 사건의 실체를 어떻게 밝힐 수 있나.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결정적 계기는 “뇌물을 줬다”는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의 일관된 진술이었다. 정 전 청장은 돈을 전달한 시기와 장소, 액수를 설득력 있게 진술했다. 특수부 수사 검사 출신인 김 변호사가 이런 이치를 모를 리 없다.

검찰과 삼성의 반발에 사제단은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있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1차 폭로 때 차명계좌를 내놓은 것 외엔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항간에선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반부패 구도로 몰고 가려 한다는 정치적 음모론까지 나돌고 있다. ‘힘센 사람과의 싸움은 신성하다’는 명분만으로 진상은 드러날 수 없다. 김 변호사는 자료가 있으면 밝혀야 한다.

정연욱 사회부 차장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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