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영평]지방자치 경쟁 유도할 새 ‘틀’ 만들자

  • 입력 2007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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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방자치는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다. 세 가지 걸림돌은 다음과 같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현재의 행정구역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는 230개의 기초자치단체 중 공무원 월급조차 줄 수 없는 단체가 반이 넘는다는 사실에서 극명하다. 농어촌에 집중된 이들 지역은 어떤 식의 지원으로도 자치를 해낼 역량을 갖추기 힘들다. 50년 전 농업시대의 행정구역을 후기 산업시대의 자치구역으로 인수한 것이 첫 번째 시대착오이다.

인구가 태부족한 농어촌의 자치구역을 중앙정부의 관리구역으로 다시 전환하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관리할 행정구역에는 사업투자와 기반시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 사업의 효과성과 주민만족도를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비슷한 규모의 자치단체와 비교해서 지속적으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지방자치를 중앙당의 정치적 지배 양식으로 생각하는 정당공천제이다. 선거철만 되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공천자를 당선시키려는 정치적 관행은 한국적 시대착오의 표상이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라는 구호는 한국의 지방선거에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정치권이 지역감정 및 이념대립을 통해 선거판을 벌이고 정권을 심판하는 식으로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기초의원까지 정당이 추천하면서 발생하는 공천 부조리는 이제 자치 혐오증을 일으키고 있다. 정당공천제는 광역단체장 수준까지만 하면 된다.

세 번째 걸림돌은 지방교부금 지급 제도이다. 지방교부금은 중앙정부가 국세의 20% 정도를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한다. 쓰는 용도에 관계없이 주는 돈이다. 교부금은 인구 및 재정 형편에 따라 도식적으로 지급되므로 지방정부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받는다. 가만있어도 배급을 주는 식의 교부금은 지방정부의 자립 및 경쟁 의욕을 크게 약화시킨다.

또 교부금 용도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자치단체는 생색내기 개발사업 및 소비사업에 충당하고 이 과정에서 부조리가 발생한다. 특별교부금이라는 것도 있다. 자치단체는 이 교부금을 타기 위해 행사를 조직하는 데 행정력을 소비한다. 중앙정부는 교부금 배정을 통해 지방정부를 기술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지방자치의 새판을 짜야 한다. 우선 현행 자치구역을 ‘자치구역’과 ‘비자치구역’으로 나눠 치열하게 경쟁시키자. 자치구역으로 할 것인가, 비자치구역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비자치구역의 단체장은 주기적으로 전문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자치구역에는 교부금을 전면 폐지하고 소득세 및 법인세를 자체 재원으로 운용하도록 조정해 생존 방안을 강구하도록 한다. 자치구역 중 광역은 정당공천제를 하되 기초는 정당공천제를 폐지한다. 자치단체와 자치단체, 자치단체와 비자치단체, 비자치단체와 비자치단체 등 3자 경쟁을 부추기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기업도시나 관광도시는 특별자치구로 지정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다.

‘왜 자치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본뜻은 잊어버린 채 정치판의 나눠 먹기로 전락해 버린 한국의 지방자치를 소생시키기 위해 국민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영평 대구대 교수 도시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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