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조선여인들, 세책에 푹빠져 가산 날리고…

  • 입력 2007년 11월 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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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제공 프로네시스
그림 제공 프로네시스
◇조선의 베스트셀러/이민희 지음/184쪽·9000원·프로네시스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주인공이 당파 싸움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권태로운 생활을 하다 음란 소설을 발표해 장안의 화제에 오른다는 줄거리의 영화 ‘음란서생’. 이 영화에는 필사된 소설책을 돈을 받고 빌려 주던 황가(오달수)라는 세책업자가 등장한다.

세책(貰冊)이란 돈 받고 빌려 주는 책. 조선 후기에 소설책을 일일이 필사해 고객에게 빌려 주고 대여료를 받아 이윤을 챙기던 세책점이 있었으니, 일종의 도서 대여점이다.

이 책은 세책업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대 교양학부 강의교수인 저자는 당시 세책업자의 장부까지 뒤져 명쾌하고도 생동감 있게 세책업의 풍경을 재구성해냈다. 내용은 엄밀한 연구서지만 읽는 맛이 살아 있다.

유교로 무장한 조선은 소설을 천대하던 시대다. 임진왜란 때 들어온 중국 통속소설은 반윤리적이라는 이유로 사대부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렇다면 세책업자는 극소수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그 반대다. 사대부들이 “세책에 빠져 지내는 사회 풍토를 걱정할 정도”로 성행했다. 한문 소설이 국문으로 번역 필사되면서 소설은 전성기를 맞았다.

18, 19세기. 사대부 집안 여성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주고 소설책을 빌려 읽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인기 있는 소설은 중국 통속소설인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초한연의(유방과 항우의 대결을 그린 소설)부터 창작소설인 구운몽 사씨남정기 장화홍련전까지 다양했다. 창작소설은 영웅과 악인의 대결, 가정 갈등과 연애를 다룬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조선 후기 문신 채제공(1720∼1799)은 “소설 읽기에 빠진 부녀자들이 비녀와 팔찌를 팔고 가산을 탕진해 버릴 정도로 경쟁적으로 빌려 읽었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 학자 이학규(1770∼1835)는 “비단옷을 입은 부녀자들이 언문 번역소설 읽기를 아주 좋아해 기름불을 밝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에 새겨 가며 몰래 읽어댄다”고 걱정한다.

당시 세책은 요즘 인터넷 게임이나 도박 같은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정약용(1762∼1836)은 “패관잡서(稗官雜書)는 인재 가운데 가장 큰 재앙”이라며 “음탕하고 추한 어조가 사람의 심령을 허무 방탕하게 하고 사특하고 요사스러운 내용이 사람의 지혜를 미혹에 빠뜨리며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가 사람의 교만한 기질을 고취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세책 열풍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서울 규방 여성들은 여름철 피서로 친정으로 나들이 갈 때 무료함을 달래려고 세책점에 사람을 보냈다. 세책점이 생겼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면 뒤질세라 돈을 주고 책을 빌렸다. 돈 대신 담보물로 반지 은비녀 등 장신구는 물론 대접 놋그릇 솥 냄비까지 맡겼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책을 돌려 읽으니 세책은 표지를 삼베로 싸 보통 책보다 훨씬 두껍게 만들었다. 본문도 두꺼운 종이를 사용해 쉬이 망가지지 않게 했다. 책장엔 들기름을 칠해 해지는 것을 막았다. 침을 묻혀 손가락으로 넘기는 부분에는 1∼3자 정도 글자를 안 쓴 ‘배려’도 흥미롭다. 장편소설은 여러 권으로 나눠 책 끝에 ‘다음 회를 보라’고 써 놨다. 다음 내용이 궁금한 독자의 안달을 내게 하는 상술. 요즘과 다를 게 없다.

독자들은 세책에 소설을 읽다가 느낀 감상이나 오탈자, 비싼 책값에 대한 불만 등도 적나라하게 적었다. 요즘 인터넷 댓글 같은 낙서였던 셈이다. 주인에게 하는 욕이 상스럽다. “이 책 주인 보소. 이 책에 낙서가 많으니 다시 보수하여 세를 놓아 먹거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 어미를 종로 거리에 갖다 놓고….” “책 주인 들어 보소. 이 책이 단권인 것을 네 권으로 만들고 남의 재물만 탐하니 그런 잡놈이 또 어디 있느냐?” 남성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그린 그림도 있다.

세책점 주인이 점잖게 답한 글도 그대로 적혀 있다. “이 책에다 욕설을 쓰거나 잡설을 쓰는 폐단이 있으면 벌금 낼 것이오니 깨끗이 보고 보내 주소서.”

조선 시대는 소설의 전성기였다. 세상에 알려진 작품만 858종이라 한다. 일제강점기 최남선(1890∼1957)이 서울의 한 세책업소를 조사했더니 그곳에서만 120종 3221책이 남아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세책은 91종 1431책. 얼마나 많은 세책이 있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분량은 적지만 조선 시대 상업출판 시대의 진면목을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책의 제목이 옥에 티다. 소제목 중 하나를 그대로 썼는데, 이 책의 흥미로운 소재나 주제와 거리가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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