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준언]교육현장 ‘말하는 영어’로 가자

  • 입력 2007년 10월 3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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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그동안 대졸 신입사원 공채 시 지원자들의 영어 사용 능력 측정 수단으로 사용해 오던 토익이나 텝스 시험 대신 ‘OPI(Oral Proficiency Interview)’라는 새로운 말하기 능력 평가도구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이번 조치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영어 능력 평가 시험을 포함한 영어 교육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삼성뿐 아니라 대기업, 중소기업들이 OPI 같은 실질적인 영어 말하기 능력 평가도구를 도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를 비롯한 영어 학습자는 왜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일까? 근본 문제는 영어 교육 시스템이 자신의 의사를 자연스러운 영어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학습자를 제대로 양성하지 못하는 점에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극도로 제한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영어가 우리에게 중요한 외국어라고 강조하지만, 영어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외국어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일반인은 하루 종일 영어 한마디 사용하지 않고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진정으로 영어 학습자들의 영어 사용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지금부터라도 사회 전반적으로 영어 사용 환경을 크게 늘려야 한다. 그래서 영어 학습자가 일상생활에서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글을 써야 할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 우선 수백 개에 이르는 대학부터 인위적으로라도 영어 사용 환경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교수는 가능하면 영어로 강의해 대학생들에게 영어 입력 양을 조금이라도 늘려 주어야 하며, 또한 학생들이 서툰 영어라도 한마디 더 사용해 볼 수 있도록 깊이 있는 영어 사용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린 학생부터 우리말뿐 아니라 영어에 상시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지난달 우리나라와 국제무대에서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의 영어 교육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 국가 중 깊은 인상을 준 나라가 말레이시아다. 이 나라는 2003년부터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주요 교과목을 자국어인 바하사 말레이시아어가 아닌 영어로 교육해 오고 있다. 이는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말레이시아는 자국민의 우수한 영어 사용 능력을 국가 발전의 중요한 동력으로 삼고 어린 학생부터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영어 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다.

뒤늦게나마 최근에 정부 차원에서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깊이 자각하고 영어 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어 정말 다행스럽다. 정부 차원의 영어 교육 혁신 방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영어 교사의 영어 사용 능력 신장,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의 효과적 활용, 영어 교사 양성체계의 개선, 단위학교별 영어체험시설 구축 등 현재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각종 영어 교육 내실화 방안은 차기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이런 영어 교육 내실화 방안이 효과를 나타낼 때, 비로소 우리나라 기업은 안심하고 젊은이들의 영어 사용 능력을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이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가수 이용의 노래 제목 ‘잊혀진 계절’처럼 영어 사용 능력이 달려 파생되는 온갖 문제가 잊혀지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박준언 숭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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