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강근]문화재 복원, 서두를 일 아니다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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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직접 나서서 문화재를 지정, 보호, 보존해야 한다는 발상은 근대 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한국처럼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었던 쓰라린 경험이 있는 민족일수록 민족문화유산의 보호와 보존을 강조한다.

일제강점기에 약탈됐던 문화재를 반환받고 파괴되거나 훼손된 문화유적을 복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돼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광복 후 대한민국이 생겨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문화재 복원 노력을 뒷받침해 온 이념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지방 행정기관이 각 지역의 영예로운 역사를 복원하고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 이면에 지역 발전이라는 정치적 성과, 관광산업 발전이 가져다줄 경제적 가치가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지방 행정기관이 앞장서서 조상의 흔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업에 몰두하는 일은 갈수록 더 잦아지고 있다.

심지어 문화재 복원을 지방 행정기관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현안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일단 문화재를 복원해 놓으면 경제적 이익을 곧바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복원해서 활용하자’는 목적의식이 앞선 나머지 지나치게 발굴을 서두르는 관행도 자주 눈에 띈다.

조선 왕조의 수도였던 서울에서는 경복궁과 창덕궁의 복원사업이 중앙 행정기관인 문화재청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신라의 천년 수도였던 경주에서는 시 당국이 나서서 황룡사의 복원과 월정교 복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 부여에서는 특정 문화재의 복원이라는 차원을 넘어 백제 역사를 폭넓게 재현한 관광단지가 건설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사업들은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나라 전체의 문화 수준을 고취하는 데 보탬이 된다. 하지만 복원 과정에서 문화재의 원형(原形)과 역사적 의의에 대한 좀 더 깊이 있고 차분한 학문적 탐구가 선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복궁 복원은 그 기준 연도를 1860년대 고종이 중건한 때로 맞춰 놓은 나머지 발굴 과정에서 그보다 오랜 시점의 유구(遺構)가 발견돼도 작업을 중단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계획한 그대로 건물을 재건하는 식으로 복원 작업이 진행됐다. 국가 예산으로 시행하는 사업이다 보니 일정을 미루거나 변경하는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전기 경복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다시없을 기회를 복원사업 일정에 쫓겨 영원히 잃어버린 것은 학술적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건조물 문화재의 완벽한 수리 방법으로 여겨져 온 ‘해체 후 복원’이라는 관행에도 적잖은 문제점이 있다. 목조 건축물이나 석조 기념물을 해체해서 수리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은 아주 신중히 내려져야 한다. 해체한 후에 원래 있었던 부재 대신에 새로운 부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지 여부를 결정할 때도 역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재건이나 신축 작업은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하는 작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익산 미륵사지 탑의 해체 수리가 올바른 복원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해체 복원 작업이 관행처럼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 전반 일제가 우리 문화재에 잘못된 복원사업을 실시하면서부터다. 20세기 후반에 진행된 재건사업에서 이 병폐가 고스란히 이어졌다.

잘못된 관행을 걷어 낸, 학술적인 정당성을 가진 복원 작업이 필요한 때다. 1년 단위로 예산이 책정되는 조급한 사업에서 벗어나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느린 템포의 복원사업이 진행되기를 고대한다.

이강근 경주대 교수·문화재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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