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카페]‘언론 대못질’ 부작용 예산처서 고스란히…

  • 입력 2007년 10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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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관련 모든 자료는 기획예산처 홈페이지에 금일 오후 5시까지 게재될 예정입니다.”

예산처는 23일 오후 2시 55분경 이런 내용의 e메일을 출입기자들에게 보냈습니다. 사전에 아무런 안내나 예고도 하지 않고 국감 자료 배포 사실을 두 시간 전에 알려온 것입니다. e메일을 보냈다는 전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통상 각 정부 부처는 거의 예외 없이 국감자료를 보도하기 하루 이틀 전 미리 배포합니다. 자료 분량이 수백 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방대할 뿐만 아니라 평소 공개되지 않는 정보도 많이 담겨 있기 때문에 기자들에게 자료를 충분히 읽어 보고 보충취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

예산처는 이런 ‘관행’을 아예 무시하고 불쑥 던져 놓은 뒤 “알아서 하라”고 한 셈입니다.

기자는 곧바로 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예산처 홍보관리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비우고 있어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통화가 가능한 홍보관리관실 실무자에게 물었습니다. 기자는 “어째서 다른 부처들처럼 기자들에게 미리 국감 자료를 배포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습니다. 그는 “국회 제출 즉시 홈페이지에 게재하라는 게 국정홍보처의 지침”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부처들은 넉넉히 시간 여유를 주고 미리 배포했다고 하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른 부처들이 홍보처 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경제부처가 많은 정부과천청사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예산처의 기사송고실은 이달 12일 폐쇄됐습니다. 1일부터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본격 시행되고 나서 예산처가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실시한 것은 한 번밖에 없습니다. 다른 부처들처럼 정례브리핑을 실시하지도 않습니다. 장관이 기자단과의 간담회를 갖는다고 하지만 8월 초 이후 실시된 적이 없습니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습니다. 한국처럼 행정 권력의 입김이 강한 나라에서는 언론의 감시가 없을 경우 자칫 민간 위에서 군림하는 ‘기생(寄生) 계층’이 되기 쉽습니다. 현 정권이 밀어붙여 온 ‘언론 대못질’의 부작용이 예산처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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