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헌재에서 잠자는 취재자유 憲訴

  • 입력 2007년 10월 24일 20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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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에서 미국의 패색이 짙어가고 있던 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스(NYT) 일요판을 받아 본 백악관과 국방부는 발칵 뒤집혔다. 미 행정부의 베트남전 정책 결정에 관한 1945∼67년의 국방부 비밀문서 내용이 6개면에 걸쳐 대서특필된 것이다.

대니얼 엘스버그 랜드연구소 연구원이 제공한 22년간의 비밀문서는 7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NYT는 문서를 입수한 뒤 3개월 동안의 분석 작업을 거쳐 이날 보도를 개시했다.

백악관의 지시로 법무부가 즉시 대응에 나섰다.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며 소송을 제기해 사흘 만에 법원의 보도 중지명령을 받아냈다. NYT는 후속 보도를 중단해야 했다. 뒤늦게 문건을 입수한 워싱턴포스트가 6월 18일 보도를 시작하자 법무부는 같은 방법으로 후속 보도를 막았다.

그러나 언론은 포기하지 않았다. 두 신문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계속했다. 지방법원 항소심에서는 정부가 이겼지만 6월 24일 연방고등법원에서는 언론이 이겼다. 이어 연방대법원이 6월 30일 두 신문의 손을 들어 줌으로써 사건은 ‘보도자유의 승리’로 결판이 났다. 두 신문은 7월 1일 비밀문서 보도를 재개했다. 사법부가 언론과 정부의 첨예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17일이었다. 이 판결로 국가안보에 관한 보도라도 사전검열은 안 된다는 확고한 원칙이 수립됐다.

미국 사법부는 언론과 권력의 갈등에 관한 수많은 판결을 통해 권력의 횡포를 저지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호했다. 미국 판례들은 우리나라의 법과 판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쳐 온 것이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5월 22일 국무회의에서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확정한 뒤 언론의 취재 자유를 짓밟는 조치들을 강행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서 “복분자를 따려면 가시에 찔린다”며 장관들에게 취재 제한 조치를 밀어붙이라고 독려하기까지 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대통령의 폭주를 당장 제동할 국가 시스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헌법재판소의 존재다.

그러나 헌재는 정부의 조치에 대해 7월 10일 제기된 헌법 소원을 앞에 놓고 3개월 반이 지나도록 위헌 여부 결정을 미루고 있다. 언론의 취재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는데도 헌재가 정치적 고려 때문에 결정을 미루는 것이 아니냐는 풀이도 있다. 헌재 재판관 9명이 모두 노 대통령이 임명한 재판관이기 때문에 나오는 억측일 뿐이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당선되면 기자실을 원상 복구하겠다고 하니 어차피 몇 달만 지나면 해결될 문제인데 헌재가 굳이 나서겠느냐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헌재가 그래선 안 된다. 살아 있는 권력이 저지른 일을 그 권력이 살아 있을 때 심판할 수 있어야 헌재의 존재 의의가 증명된다.

헌재가 결정을 미루다가 기자실이 복구된 뒤에 ‘실익(實益)이 없다’는 이유로 헌법 소원을 각하한다면 이 또한 스스로 존재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뀐 뒤 기자실이 복구되더라도 헌재가 선언적 의미의 결정이라도 해야 ‘제2의 노무현’에 의한 언론 자유 침해를 예방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기본권에 대한 헌재의 역사적 판결이 조속히 나와야 할 이유는 넘칠 만큼 많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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