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헌신짝’ 장관

  • 입력 2007년 10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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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8월 7일 개각 때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교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를 “장관직 수행 의욕이 너무 강해서…”라고 설명했다. 선거법상 내년 총선 출마에 지장 없는 2월 9일까지 장관을 계속하겠다는 욕심을 ‘장관직 수행 의욕’으로 포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장관은 최근 “올 연말 대선 때 역할을 해야겠다”며 “늦어도 11월 초에는 장관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사퇴 시기를 3개월이나 앞당겨 대선에서 하겠다는 모종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이 장관은 지난 대선 때 대선자금 32억여 원을 불법 모금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그 일로 구속돼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5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지냈다. 그의 장관 기용은 역시 대선자금 사건으로 구속됐던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함께 노 대통령의 대표적인 보은(報恩) 인사로 꼽힌다. 그나마 노동전문가를 자처하는 그의 장관직 수행도 높은 점수를 받긴 어렵다. 11일 비정규직 문제 토론회에 참석했다가 감금돼 수모를 겪은 일은 “노동부 현안이 대부분 마무리돼 사퇴하겠다”는 그의 말을 무색하게 한다.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그만큼 인사가 중요하고 어렵다는 뜻이다. 역대 정권이 대부분 인사에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이 정권만큼 ‘깜이 안 되는 장관’들을 무더기 배출한 정권도 없을 것이다. 대선 후보 캠프에 들어가겠다며 장관직을 헌신짝처럼 벗어 던진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 같은 사람도 있었다. 평생 공직 생활을 하는 공무원들이 이런 장관들을 보며 일할 기분이 나겠는가.

▷노 대통령은 ‘추천-검증-조정’이란 3단계의 시스템을 통해 적재적소의 인사를 하겠다며 인사수석설을 신설했다. 추천은 인사수석, 검증은 민정수석으로 역할 분담했다. 그러나 시스템 인사는 말뿐이었다. 추천 기준은 ‘코드’ ‘보은’ ‘경력 관리’ ‘낙선(落選) 위로’였고, 그런 추천일수록 검증은 겉핥기에 그쳤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다섯 번이나 바뀌어 평균 임기 8.2개월이었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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