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희상]인천 앞바다 北해군 놀이터 될라

  • 입력 2007년 10월 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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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대한 존중은 고사하고 예의조차 찾기 어려운 희한한 정상회담이었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을 축수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화려한 김일성 찬가 앞에서 기립박수까지 하는 모습에는 마음이 참담했다.

길고 화려한 제목의 합의문은 낭패감만 더해 주었다. 세계가 고대하던 핵 문제에 대해서는 ‘함께 노력한다’는 하나 마나 한 소리로 넘어가면서 경제 지원에다가 종전선언을 서둘고 서해 해상 문제의 논의를 약속했으니 말이다.

북핵 비켜가고 NLL은 양보하나

남북한 간에 핵 문제보다 더 큰 의제가 무엇인가? 6자회담에서 잘 풀려가지 않느냐고 하지만 북한 핵문제의 핵심 쟁점은 기존 핵탄두와 핵물질이지 다 낡아 빠진 영변 핵시설이 아니다. 이번 베이징 회담에서도 기껏 영변 주변의 3개 시설을 불능화하는 데 그쳤다.

북핵은 주변 4국에는 수많은 세계 안보 이슈의 하나일 뿐이지만 우리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다. 어렵사리 만난 남북 정상이 핵 문제는 비켜 가면서 손을 맞잡아 평화를 노래하고 퍼 주기를 계속하면 북한은 무엇 때문에 핵을 포기할 것이며 6자회담은 무슨 힘을 받겠는가? 북한 핵이 급속히 기정사실화할지 겁난다.

대통령은 “평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하지만 핵 폐기 없이 평화를 운운하는 것은 사기(詐欺)다. 2000년 6·15선언 이후에도 핵무기를 만들던 북한이 아닌가? 대통령은 휴전선을 걸어 넘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그 근처만 가도 허공을 떠도는 원혼의 통곡 소리가 들리고 수많은 전투 시설에 가득한 살기를 느낀다. 그것이 현실이다. 안 보이는 것은 희망일 뿐이다. 대통령이 어떤 마음으로 평양을 갔는지 알 듯하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을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문제도 그렇다. 지금도 수시로 분쟁이 발생하는데 신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과 북이 함께 어로작업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를 것이다. 양측의 경비함이 달려들면 평화협력지대가 아니라 만성적인 분쟁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선박이 해주 직항로를 따라 자유롭게 넘나들면 NLL이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이런 문제일수록 하나의 문이 열리면 다음 문이 열리기 쉬운 법이다. 인천 앞바다가 점차 북한 해군의 놀이터가 되고 한국의 심장지대인 수도권 전체의 숨통을 조여들지 모른다.

위기는 방심하는 자를 피해 가는 경우가 없고, 경계하며 대비하는 자를 벌주는 법도 없다. 북한 핵 폐기는 하루빨리 정권을 바꾸는 외에는 도리가 없을 듯하지만 이제는 그 외의 일에 대해서도 각별히 경계할 필요가 생겼다.

서해평화수역 분쟁지역화 우려

노 대통령은 남북 간에 존재하는 ‘불신의 장벽’을 느꼈다는데 실은 그것이 핵심이다. 아무리 퍼 주기 식 남북 경협으로 북한 경제가 회복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어도 체제가 바뀌고 개방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통령 스스로 “핵 문제가 풀리면 평화협력체제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중요한 점은 순서다. 먼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 NLL 문제도 그렇다. 서해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 설정이 불가피하다 해도 해주 공단이 활성화되고 남북 간에 신뢰와 평화가 충분히 정착된 후에 고려해도 늦지 않다.

매사에는 선(先)과 후(後)가 있다. 때가 중요하다. 총리든 국방장관이든 이런 기본 인식을 확고히 한다면 큰 잘못은 면할 수 있다. 자칫 소홀히 하면 돌이킬 수 없는 분야가 안보 문제다. 11월로 예정된 국방장관 회담에 더욱 신중하고 사려 깊게 대처하기 바란다.

김희상 전 대통령국방보좌관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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