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송혜진]조선 비파 명인 송경운의 고민

  • 입력 200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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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주변의 음악 전통을 생각해 본다. 지켜야 할 옛 음악 전통과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의 거리가 지독히도 먼 오늘. 국악 하는 사람들은 고민이 많다. 전통을 바르게 이어야겠다는 걱정에 어깨가 무겁고, 청중과 소통하고 싶은 가슴 터질 듯한 열망에 길을 찾느라 애쓴다. 개인 발표회, 500년 전통의 왕실음악, 100년 남짓 이어진 민속음악, 1900년대에 작곡된 서양풍이 가미된 국악 창작곡, 비 오는 날 카페에서 들으면 좋을 퓨전음악까지 두루 담아 낸다. 이것도 놓을 수 없고 저것도 외면할 수 없는 갈등이 이렇게 표면화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는 비단 우리 시대 음악가의 걱정거리만은 아니었다.

17세기 무렵 송경운(宋慶雲)이라는 비파 명인이 있었다. 본래 절도사 집의 하인이었지만 아홉 살쯤에 비파를 배워 10대 초반부터 명연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신기에 가까운 그의 연주는 왕실과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반평생을 호화로운 잔치 자리에서 보냈다. 무슨 일이든 잘 해내는 사람을 보고 ‘송경운 비파 솜씨 같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정묘호란 때 그는 전주로 피란해 정착했다.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고 꽃 핀 아침과 달빛 고운 밤마다 비파를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 집 문전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는 7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주에 머물며 누구든 음악을 듣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 연주했다.

이런 송경운의 삶에도 고민은 있었다. 그는 세상에 전하는 ‘고조(古調)’의 비파 음악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 느릿하고 비루하지 않으며 속세의 간사한 소리를 씻어 낸 바른 기상을 가진 옛 음악을 후대에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청중은 이를 즐기지 않았다. 고민 끝에 송경운은 생각을 정리했다. ‘음악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인데, 듣고도 즐겁지 않다면 무슨 유익함이 있을까?’ 이후 송경운은 옛 음악에 당대의 음악을 조화시켜 누구나 듣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연주했다. 이런 생각은 그를 인터뷰해 ‘송경운전’을 쓴 이기발이라는 이에 의해 후세에 전해졌다.

잘 가꾼 정원에서 신선 같은 풍모로 비파를 연주하며 꽃밭 사이로 음악이 퍼지는 것을 즐겼다는 매력적인 조선의 비파 연주가는 무슨 곡을 연주했을까. 연주 솜씨는 어느 정도였을까.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아쉽게도 오늘날 송경운의 음악은 전설로 추억될 뿐 그 가락을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허전한 일이다.

우리 전통음악문화의 유산은 ‘사람’에 의해 전승된다. 한 사람의 명인은 하나의 살아 있는 음악박물관이다. 문화를 기억하고 지키며 전승하는 주체가 곧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진실이다. 그 진실의 유산을 이어 가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 몇몇 명성 있는 음악가의 그늘 아래서, 문화재 보호정책의 사각지대에서 ‘나 아니면 누가 지키랴’ 하는 심정으로 독립투사처럼 옛 음악을 지키는 사람,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사람들이 듣고 즐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 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 가는 사람, 전통에서 너무 멀리 튕겨 나간 사람, 모두 한결같이 소중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외롭다. 옛 음악을 내려놓지 못한 채 어떻게든 지켜 보려 홀로 애쓰는 이는 말할 것도 없고, 송경운처럼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도 고단하긴 마찬가지다. 한국 음악의 맥을 이어 나갈 이들이 덜 외로워하는 세상을 어떻게든 만들어보고 싶다.

송혜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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