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상록]‘아프간’ 취재 막고 입마저 닫은 외교부

  • 입력 2007년 9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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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우리가 여기에 왜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

43일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들은 이번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푸념을 하며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이번 사건의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가 사건 내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교부는 국내 언론의 아프간 현장 취재까지 막았다.

외교부는 이번 사건이 터진 직후인 지난달 20일 “아프간 현장 취재 과정에 안전상의 위험이 생길 수 있다”며 “주한 아프간대사관에 언론인을 포함한 모든 한국인들에 대한 비자 발급 금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7일에는 새 여권법에 따라 아프간을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했으며 정부의 허가 없이는 방문할 수 없도록 제도화했다.

이렇다 보니 기자들이 할 수 있는 취재의 대부분은 쏟아지는 외신 보도가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지만, 외교부는 이에 대해서도 속 시원하게 답하지 않았다.

피랍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대외적으로 잘못 알려지면 납치단체의 요구수준만 높아진다는 설명만 되돌아왔다.

외교부가 이렇게 입을 닫은 것은 공교롭게도 사건 초기 탈레반이 피랍자 2명을 잇달아 살해하면서 정부의 대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 직후였다. 이후 브리핑은 사실상 청와대로 넘어갔다. 청와대가 피랍자 19명 전원 석방 합의 사실을 발표하고 배경을 설명했던 28일에도 외교부 브리핑은 없었다. 피랍자들이 풀려난 29, 30일에도 중재과정이나 석방 경로 등 국민적 관심 사안에 대한 브리핑은 청와대에서 이뤄졌다. 외교부 브리핑에서 확인한 것은 풀려난 사람의 이름뿐이었다.

이번 사건이 피랍자들의 안전이 걸린 민감한 사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언론이 피랍사건 진행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국민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지 않는 것은 외교부가 사실상 ‘통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이 외신에 의존하다 보니 외신이 대형 오보를 내도 사실관계가 한동안 확인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외교부가 언론의 현지 취재를 봉쇄한 뒤 브리핑까지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국민이 엇갈리는 보도로 적잖은 혼란을 겪었다”며 “정부의 취재통제 조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상록 정치부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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