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보다 현장수요… 서류-면접과정서 남성합격 늘려”

  • 입력 2007년 8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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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국내 기업이 대졸 신입사원을 뽑을 때 남성 지원자를 일정 비율 이상 채용하는 ‘남성 쿼터제’를 도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 대기업의 인턴십 전형 면접에서 면접관이 지원자들에게 질문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상당수 국내 기업이 대졸 신입사원을 뽑을 때 남성 지원자를 일정 비율 이상 채용하는 ‘남성 쿼터제’를 도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 대기업의 인턴십 전형 면접에서 면접관이 지원자들에게 질문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성적대로만 뽑으면 여성이 반수가 넘을 겁니다. 그러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아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으로 업무 연속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간부도 많습니다.” 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본보 취재팀에 이렇게 털어놓았다. ‘남성 쿼터제’를 운영하는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경영 현실상 불가피한 측면이 많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성계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김향아 연구원은 “일선에서 불만이 많다는 이유로 남성 쿼터제를 도입한 것은 시대착오적 채용행태”라고 주장했다.》

제조업 “실무부서 남성 선호… 비율조정 불가피”

쿼터 적용 않는 유통-은행-공기업선 여풍 거세

여성계 “또 다른 성차별… 열린 기회 보장해야”

○ 남성 쿼터제 운영 실태

본보 취재 결과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모집할 때 남성 쿼터제를 적용하는 방식은 △서류전형 및 면접과정 조절형 △최종단계 조절형 △직군별 모집형으로 나뉜다.

섬유와 화학이 주력 업종인 A그룹은 최종단계 조절형. 이 그룹은 서류전형(대학 학점+공인 영어시험 성적)과 면접시험에서는 철저하게 성적으로만 등수를 매긴다.

그런 다음 남성과 여성 지원자로 나눠 성별(性別) 내에서 각각 등수를 정한 뒤 계열사 별로 요청한 ‘성별 신입사원 충원 계획안’에 따라 합격자를 결정한다.

제조업체가 많은 A그룹 특성 상 남성에 대한 수요가 훨씬 많다. 이에 따라 전체 등수가 앞서는 여성 지원자가 떨어지고 등수가 뒤지는 남성 지원자가 합격하는 사례가 자주 나온다.

한 시중은행은 면접 단계에서 남성과 여성의 수를 조절한다. 각 지점에서 요청한 남자와 여자 신입행원 수를 미리 면접관에게 알려줘 면접 점수를 통해 남녀 성비를 조절하는 것이다.

직군별 모집으로 남성 쿼터제를 간접적으로 시행하는 기업도 있다.

한 보험회사와 신용카드 회사는 보험설계사나 카드 모집인을 관리하는 영업관리직을 사무직과 분리해서 뽑는다.

여성들이 영업직을 기피하고 주로 사무직에 지원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성 합격자 수를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 업종별로 차이 심한 남성 쿼터제

조사 결과 보험, 카드사 등 영업직이 많은 업종이나 식품, 섬유, 생활용품 등 경공업 업체가 주로 남성 쿼터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업종은 전통적으로 여성 지원자가 많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면 이공계 수요가 많은 건설과 중공업, 남성 구직자가 선호하는 증권사는 우수한 남성 지원자들이 몰려 남성 쿼터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투자증권 인사담당 이병철 상무는 “영업점에서 여성 직원에 대한 고객 호감도가 높아 여성 비율을 늘리고 싶지만 우수한 남성 지원자가 많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여성 직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남성 쿼터제를 도입하지 않은 업종도 있다.

백화점, 할인점 등 유통업은 고객 대부분이 여성인 데다 섬세함을 중시하는 업종 특성상 남성 쿼터를 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은행권도 기업금융을 우선시하는 일부 은행을 제외하고는 여성 신입행원 비중이 다른 업종에 비해 높다. 일부 외국계 은행은 여성을 더 많이 뽑는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과 영국계 SC제일은행은 올해 상반기에 채용한 신입행원 중 여성 비중이 각각 53.6%와 74.2%로 절반을 넘었다.

○ 기업은 왜 남성 쿼터제를 도입하나

기업들은 여성의 높은 이직률을 남성 쿼터제 도입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는다. 최근 중견 B그룹이 3년 전에 입사한 대졸 공채 사원의 이직률을 성별로 조사한 결과 여성이 남성보다 30%포인트가량 높았다.

B그룹 인사담당 임원은 “결혼이나 대학원 진학을 위해 퇴사하는 여성 직원이 많아 실무 부서는 남성 직원을 선호한다”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따른 업무 공백 등 간접비 부담도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성 상사가 남성 부하직원을 선호하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업무 지시를 내리거나 각종 모임을 가질 때 남성 직원이 편하다는 것.

입사시험 성적이 반드시 실무능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남성 쿼터제를 도입했다고 주장하는 기업도 있다.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는 최근 면접에 앞서 서류심사와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성적으로만 뽑을 경우 여성 합격자가 80% 이상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프로젝트 수주가 많은 업무 특성을 고려해 여성 합격자 비율을 40% 선으로 낮춘 대신 남성은 60%로 높였다.

이 회사 인사 관계자는 “종합적인 판단력이 필요한 기획실이나 수주팀에 여성을 배치했지만 실제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례가 많지 않아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태희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인사담당 이사는 “결혼과 출산 후에 낮은 업무 성과를 보이거나 이직률이 높다는 사실은 여성들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지적”이라며 “하지만 남성 위주의 기업문화를 바꾸는 대신 남성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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