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상호]감정 해소 ‘군사적 보복론’ 위험

  • 입력 2007년 8월 3일 20시 24분


코멘트
2004년 9월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공화국의 한 공립학교.

체첸 무장괴한들이 학생을 포함해 민간인 1000여 명을 인질로 잡고 러시아 당국과 대치했다. 괴한들은 체첸 주둔 러시아군의 철군을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테러단체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납치세력에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 며칠 뒤 러시아는 특수부대를 투입해 괴한들을 소탕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 180여 명을 포함해 330여 명이 사망해 최악의 인질구출 작전으로 기록됐다.

1980년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구출작전이 실패한 것도 당시 지미 카터 정부가 일부 강경론에 밀려 철저한 준비 없이 작전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의 한국인 납치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일각에서 군사작전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누리꾼은 한국 특수부대를 보내 인질을 구출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일부 언론은 한술 더 떠 특전사와 해병대 등 수천 명 규모의 한국 전투부대가 다국적군 지원을 받으면 탈레반 세력을 소탕할 수 있다는 보도까지 했다. 한국군은 공비 토벌과 베트남전 참전 경험이 있어 탈레반과 게릴라전을 해도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군 통수권자가 지시만 하면 소탕작전을 할 수 있다는 게 군 내부 여론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 보도는 군사 외교적으로 현실성이 결여된 일회성 감정 해소에 불과하다. 아프간 정부가 외국 군대의 군사작전을 승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파병 준비에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강경론’이 부각될수록 인질들의 신변은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일부 인질을 살해한 납치세력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현 시점에서 한국 주도의 ‘군사적 보복론’이 확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누가 주도하든 섣부른 군사작전은 남은 인질들의 귀환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제2, 제3의 납치사태와 군사작전이 반복되는 ‘피의 악순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남은 인질들이 풀려나 무사히 귀국할 때까지 국민은 절제와 인내의 미덕을 발휘하고 언론도 강경론에 편승하거나 이를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 생사의 기로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인질들의 안전 유지가 최우선 과제다.

윤상호 정치부 ysh100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