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향]중산층 살찌우는 지도자 나와야

  • 입력 2007년 7월 25일 02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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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영국에 머무는 동안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의 총리 직 계승을 보게 되었다. 부러웠던 탓인가, ‘내각책임제가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브라운은 10년 동안 블레어 정부의 유능한 재무장관이었다. 대통령제에서는 한순간 대중의 쏠림으로 무자격자가 당선될 수 있지만 내각책임제에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능력이 확인된 인물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대통령의 임기는 제한되지만, 집단책임제인 내각제는 권력의 부패로 나아갈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임기에 제한이 없다. 그렇지만 내각책임제에서도 한 지도자가 3선 이상을 성취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드물다.

예외로, 마거릿 대처가 11년 반 동안 세 번 연속 집권한 것과 얼마 전 물러난 블레어가 역시 연속해서 10년 동안 총리 직에 있었던 것을 들 수 있다. 블레어는 집권 말기 이라크전에 휘말리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받았지만 그전까지는 전반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대처는 그렇지 않았다. 국민은 그녀를 흠모하는 사람과 증오하는 사람의 두 극단으로 갈렸는데, 특히 지식인 가운데 대처를 좋아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가 세 번 연속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이제껏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영국사회의 계층 구조를 분석하고 그에 맞게 국민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관건은 ‘중산층의 발견’이었다.

한때 국민의 70% “나도 중산층”

대처의 등장 이전에 모든 정당과 정치인은 사회의 최대 다수를 노동계급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정권을 잡으려 했다. 그에 반해 대처는 사회적 다수를 ‘중산층과 중산층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접근하는 정책을 폈다. 이것은 영국 정치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고, 그전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블레어가 노동당을 노동계급의 당에서 대중정당으로 탈바꿈시킨 것도 대처가 가한 충격 때문이었다.

대처는 부의 창출을 미덕으로 격상시키고, 돈 버는 일이 ‘어쩐지 옳지 못하다’라는 위선을 몰아내려 했다. 영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떳떳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서가 19세기 이래 퍼져 있었다. 이에 맞서 대처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나보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자’고 설파했다. 대처는 자본주의라는 ‘더러운’ 단어를 당당하게 변호한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그녀는 ‘대중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그것은 부자만을 위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본가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실현 방안의 하나로 대처는 공영 임대주택과 공기업의 주식을 매각했다. 그 결과 현재 영국 총주택의 3분의 2가 거주자 소유이며, 그녀가 떠났을 때 국민의 4분의 1이 주식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대처의 가장 두꺼운 지지층은 이런 정책으로 이익을 본 노동계급 상층부와 중간계급 하층부였다. 이들을 ‘천박한 프티 부르주아’로 폄훼한 마르크스적 시각과 달리, 대처는 그들을 ‘근면과 노력과 건전한 자기개선의 주체’로 간주했다.

좌파의 전통적 수법은 못 가진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다수이고 저들은 소수’라며 선동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처는 가진 사람들이 사실은 다수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으며, 못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들도 가질 수 있다는 희망과 가지려는 욕구를 불어넣었다.

10년간 정책 실패로 갈수록 줄어

지난 10년간의 정책 실패로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 갈수록 줄고 있지만, 한때는 국민의 70% 정도가 자신은 중산층이라고 여론조사에서 응답한 적이 있다. 국민을 강남 사는 사람들과 그 외로 갈라놓는 이상한 분류법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판단하면 우리 사회의 최대 다수는 중산층이다. 이제 그들을 최대 다수로 인정하고 그들의 욕구와 염원을 충족시키겠다고 약속하는 정치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나아가 모든 정당의 대선 후보들은 자신의 정책이 사회의 어느 부분에 가장 큰 이익을 안겨 줄 것인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는 정치인은 사기꾼이나 다름없다. 유권자도 그런 사기꾼들을 솎아 낼 의무가 있다. 이 나라 정치의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의 비상을 위하여.

박지향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서양사 jihangp@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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