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자브리핑은 국민 알 권리에 대한 직무 유기

  • 입력 2007년 7월 16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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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5월 각 부처의 브리핑룸을 통폐합하고 기자들의 공무원 접촉을 극도로 제한하는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보완책이라며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브리핑제를 내놓았다. 기자들이 취재하고 싶은 내용을 해당 부처의 전자브리핑 게시판에 질문 형식으로 올리면 부처가 게시판에 답을 띄워 준다는 제도다. 그러나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가 그제 시험 운영을 해 본 결과, 이 제도는 취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언론 감시용으로 악용될 소지마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질문과 답변이 게시판에 공개되고 정부 관계자들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이를 볼 수 있어서 개별 언론사의 독자적 취재가 불가능하다. 중요한 취재는 동료 기자들에게도 내용을 알리지 않을 만큼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 언론의 일하는 방식이자 직업윤리다. 모름지기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중시하는 나라에선 이 원칙에 예외가 없다. 자신이 무엇을 물어, 어떤 답을 얻었는지가 노출되는 시스템에 의존할 기자는 없다. 이런 제도가 다양하고 차별화된 기사 생산과 공급을 저해할 것은 너무나 뻔하다. 정부는 바로 그런 점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자브리핑제는 결국 뉴스의 출처와 해석을 정부가 장악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로운 보도와 비판을 막으려는 제도다. 기자실 통폐합과 공무원 접촉 제한으로도 모자라, 취재를 도와주는 척하며 교묘하게 취재를 위축시키고 정보를 획일화하려는 것이다.

매일 마감 시간에 쫓기는 기자들이 언제 게시판에 뜰지도 모를 정부 답변을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코미디다. 분초를 다투는 판에 금요일 오후 6시 이후 사이트에 올린 질문의 답변은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을 쓰는 정부의 국민 알 권리에 대한 직무 유기다. 기자들의 질문이 전자브리핑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되면 정부가 기자의 성향 파악과 관리 등에 악용할 소지도 다분하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28억 원이나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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