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종찬]건보개혁, 국민 목소리를 들어라

  • 입력 2007년 7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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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인 1977년 7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은 복지국가의 초석을 이루게 되는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기존의 산재보험 외에 500인 이상 사업장에서 강제 의료보험을 실시했다. 1989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될 때까지 국내 의료보험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다.

의료보험의 실시로 의료는 국민에게 바싹 다가왔다. 의료인은 저수가를 감내하고 복지국가 건설에 동참했다. 병원의 문턱이 낮아짐에 따라 국민의 의료 이용은 한결 편해졌다. 중등교육의 평준화를 경험한 국민은 의료에서도 평등하다고 믿게 됐다.

보험의 관리 운영 방식이 행정적으로 통합돼 건강보험이란 이름으로 바뀌고 의료의 형평성이 이뤄지는 듯 보였지만 이는 환상에 불과했음이 곧 드러났다. 지난 10여 년 사이에 건강보험의 역사적 정신인 사회연대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이다.

건강보험은 한국 의료의 자본주의적 발달을 위한 토양으로 작용했지만 이런 순기능에 적신호가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급속한 ‘의료의 기업화’는 국민의료비의 상승을 계속 부채질하고 의료 이용의 양극화를 초래한다. 첨단 의술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건강보험 재정으로는 첨단 의술에 의한 의료비용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적신호의 핵심은 진료행위별로 수가를 산정하는 현재의 방식에 있다. 행위별 수가제가 바뀌지 않으면 의료비는 계속 상승한다. 수가 방식을 그대로 둔 채 건강보험의 청사진을 아무리 짜 봐야 목적을 달성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건강보험은 의료제도에서 분배의 영역이지 생산의 영역은 아니다. 한국 의료의 생산 과정이 빠른 속도로 기업화, 세계화되는데도 불구하고 30년 전의 수가 방식에 집착한다면 곳곳에서 날아오는 도전의 화살을 감당해 낼 수 없다. 7월 1일부터 실시 중인 새 급여 방식에 대해 시민단체와 의료계가 반대하는 상황은 보험수가와 깊은 연관이 있다.

세계 각국이 실시하는 보험수가 방식의 장단점을 면밀히 비교해서 한국의 현실에 맞는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정부 시민사회 기업 노동농민단체 의료인이 합의해야 한다.

이종찬 아주대 교수 인문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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