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정은미]빛에 열광한 인상파 화가들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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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미술 전시회가 한창이다. 약방의 감초처럼 ‘인상파’가 등장한다. 전시회의 핵심 단어로 인상파를 내걸면 흥행이 보장된다는 말도 나온다. 인상파라는 말을 흔하게 들었지만 무엇이 인상파의 핵심인가를 아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을 듯싶다.

인상파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들은 ‘빛을 그린 화가들’이다. 빛에 몰입한(?) 인상파 덕분에 근대와 현대 미술의 문이 활짝 열렸다는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빛을 그리기 위해 인상파 화가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참담했다. 오늘날에는 대접 받는 스타지만 당시에는 인상주의(풋내기 화가가 되는 대로 그린 것 같은 인상의 그림)라는 비아냥거림 속에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렸다.

인상주의라는 말은 프랑스 ‘살롱 전’(19세기 화가로 데뷔하는 유일한 관전)에서 줄줄이 낙방한 인상파 화가의 이른바 ‘낙선전’에서 비롯됐다. 나폴레옹 3세는 1863년 살롱 전에서 떨어진 작품을 따로 모아 낙선전을 기획했다.

“도대체 뭘 그린 거죠?” 당시 파리 사람들은 인상파 그림을 보고 이같이 물었다. 그림을 보면 이 말에 수긍이 간다. 도대체 뭘 그렸는지, 어디가 윈지 아랜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물감은 덕지덕지 발라져 있어 솔직히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가까이 다가가면 돋보기로 그림을 보는 듯하다(진짜 그런지 궁금하다면 전시장에 가서 꼭 확인해 보시길!).

인상파 화가들은 왜 이렇게 그렸을까. 중세 화가는 빛을 통해 ‘신의 영광’을 찬양했다. 르네상스 화가는 빛으로 명암법을 실험했다.

인상파는 달랐다. 빛을 사물의 하나로 여겼다. ‘기계의 눈’으로 빛을 분석했다. 프랑스의 젊은 화가들은 답답하고 어둑한 아틀리에에서 뛰쳐나와 센 강이나 우아즈 강의 제방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자연의 빛 아래에서 그림을 그리자 칙칙한 암갈색은 자연히 사라졌다. 그 대신에 화사한 파스텔 색이 자리를 채웠다.

그랬다. 사물은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다. 자연 빛 아래 세상은 인상파 그림처럼 엄청나게 환하다. 빛은 늘 한 빛이지만 인상파 이전과 이후의 빛은 확연히 달라졌다.

모네의 ‘수련’을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감상해 보시라. 빛에 둘러싸인 지베르니 정원의 연못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잔잔한 바람의 흐름, 촉촉이 젖어 드는 연못의 어슴푸레한 모습, 수련의 자태…. 수련이 피어 있는 물 위에서 수영을 하는 듯한 감동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모네의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한 폭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추상화의 뿌리로도 볼 수 있는 인상파 그림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셈이다. 곧이어 빛의 프리즘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자 빛을 그려 낸 인상파는 화단에서 승리를 거둔다. 과학과 실증이 사상을 지배하던 19세기 후반에 화가들이 광학이론에 심취한 것은 시대의 필연일지 모른다.

하지만 ‘빛의 인상’이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 허무한 것이기도 하다. 인상파 그림 안의 모든 요소가 물감 덩어리로 희뿌옇게 뒤섞여 구분이 모호하듯 말이다. 누가 뭐래도 근대화는 인간의 시공간 개념을 변화시켰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정지된 것이란 하나도 없는 듯이 보이는 때가 도래했다.

인상파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기술 진보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기대가 꼭 장밋빛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등 앞날에 대한 근대인의 막연한 불안감이 인상파 그림에서 예견된다. 인상파는 근대화가 몰고 온 시대의 변화상을 냉철하게 포착한 화가들이다.

정은미 화가·명지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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