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유럽 와인, 한국 쌀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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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5월 24일은 프랑스 와인의 명예에 먹물이 튄 날이다. 파리에서 눈을 가리고 시음대회(블라인드 테이스팅)를 연 결과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에 1위를 뺏긴 것이다. 이 대회가 사기극이었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프랑스 전역이 들끓었다. ‘파리의 심판’이라고 불린 이 대회 30주년을 기념해 작년 같은 날 영국 런던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나파밸리에서 재대결이 벌어졌다. 결과는 1∼5위를 캘리포니아 와인에 내주고 말았다. 프랑스 와인의 완패였다.

▷미국 호주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와인 생산 후발국들의 값싸고 질 좋은 와인 공세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와인 생산업자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와인 대륙’의 전통과 명성도 빛을 잃을 수 있음을 말해 준다. 급기야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유럽 대륙의 와인산업을 구조조정하기 위해 27개 회원국 전체 포도밭 360만 ha의 6%인 20만 ha에 포도를 심지 말도록 하겠다고 나섰다. 유럽 와인의 과잉 공급을 막겠다는 것이다.

▷비(非)유럽산 신대륙 와인이 뜨는 요인은 저가(低價)시장 공략과 와이너리 관광 개발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 데 있다. 한 병에 수백 달러, 수천 달러 하는 고급 와인 시장에 단돈 10달러 안팎의 질 좋은 와인으로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5월 미국시장에 처음 수출된 한국 쌀도 뜻밖에 인기가 높다고 한다. 전북에서 출하된 ‘제희미곡’은 10kg 한 부대에 34.99달러에 팔렸다. 이 가격은 9.07kg(20파운드)에 16.99달러인 미국 칼로스 쌀의 두 배에 가까운 고가(高價)이지만 초기 진출치고는 성공적으로 팔리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하는 교포들이 구입했지만 한국도 프리미엄급 쌀을 개발해 이런 틈새시장을 파고들면 승산이 있는 것이다. 다른 농산물의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아닌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프리미엄급 야채나 과일을 생산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농산물 시장에서도 영원한 강자가 없으며, 전략과 노력 여하에 따라 우리 농업도 활로를 찾을 수 있음을 신대륙 와인과 한국 쌀이 보여주고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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