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정위, 세계 산업의 地形 변화부터 공부해야

  • 입력 2007년 6월 22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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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국제경쟁력을 위해 인수합병(M&A)으로 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석유화학 업계의 논리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뿐 아니라 같은 정부부처인 산업자원부도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탄식한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중동 산유국들이 국내보다 60%나 싼 원가를 무기로 유화제품 자체 생산을 시작했고, 중국도 관련 설비를 급속히 늘리고 있다. 살아남으려면 구조 조정을 미룰 수 없는 게 우리 유화업계 상황이다.

공정위는 작년에도 동양제철화학이 미국계 타이어 원료 제조업체 CCC를 인수하려 하자 제동을 걸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M&A였음에도 세계 시장의 5%에 불과한 한국 시장의 점유율을 문제 삼아 “CCC의 한국법인 CCK는 인수하지 말고 따로 떼서 팔라”고 강요했다. 이마트가 월마트코리아를 인수할 때도 공정위는 “매장 4, 5개를 매각해 시장점유율을 낮추라”고 요구했다. 두 건 모두 행정소송 중이다.

세계화로 산업과 경쟁의 지형(地形)이 급변했다. 국내 유화업체들은 생산량의 절반을 수출하며 수출 물량의 절반은 중국에 판다. 경쟁이 전 지구적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국내 시장 점유율만 따져서야 기업들이 유연한 세계 전략을 펼 수 없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국내 시장 점유율 50%를 넘으면 기업 결합을 규제하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세계화의 개념이 없었던 30, 40년 전에나 통할 논리다. 미국도 국내시장 점유율을 이유로 규제한 사례도 있다.

공정위의 구태를 지켜보노라면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따라 앞으로 있을 금융업체 간 M&A 움직임도 제동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금융산업 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골드만삭스 같은 세계적 투자은행(IB)을 키울 수도 없고, 동북아 금융허브는 꿈도 못 꾼다. 공정위도 이제 세계시장 흐름에 맞지 않아 시대착오적인 M&A 규제나 출자총액 제한으로 기업의 발목을 잡을 생각일랑 그만하고 기업들에 날개를 달아 줘야 한다.

기업이 죽고 나면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행정도 학문도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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