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부 열심히 한 학생은 좋은 대학 갈 생각 말라’

  • 입력 2007년 6월 15일 2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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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미래가 달린 우수한 인적자원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경쟁을 촉진하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그런 뜻에서 대학들이 우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고, 고교생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상을 줄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것이 희대의 사회악(惡)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상 초유의 국무총리 주재 긴급 교육관계 장관회의를 어제 열어 변별력이 떨어지는 내신 위주의 입시요강을 대학에 강요했다.

정부 방침에 순종하지 않는 대학에 대해서는 재정 지원금은 물론이고 과학기술처 등 6개 부처가 주는 연구 지원금까지 끊겠다고 위협했다. 세금에서 나가는 대학 지원금은 본질적으로 입시와는 관련이 없다. 정부가 세부적인 대학 입시요강까지 관여하면서 돈줄을 끊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권위주의 시절에도 보지 못했던 횡포다.

정부기관 조사에 따르면 수능과 내신의 등급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무려 75%다. 내신 1등급 학생이 수능 7등급인 경우도 있다. 반면에 우수 고교의 내신 3, 4 등급 학생은 수능 1등급이 될 수 있다. 엄연히 존재하는 학교 간 학력 격차를 무시하는 것은 더 열심히 공부해 성취도가 높은 수험생을 역(逆)차별하는 정책이다. 세계에 이런 교육정책을 펴는 선진국이 있으면 대 보라.

내신 실질반영률을 50%로 하면 수능 고득점자들이 몰리는 우수 대학들은 내신만으로 학생을 뽑는 것과 마찬가지다. 입시가 다섯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뛰어들어 학교와 수험생의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다.

내신 때문에 일선 학교에서는 급우들 간에 노트도 빌려 주지 않고 심지어 심각한 인성(人性) 파괴 현상까지 나타난 지 오래다. 평준화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과학고 외국어고 자립형사립고의 설립을 허용했으면 이들 학교 학생이 실력에 맞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신에서 불리해 특목고 학생들의 자퇴가 잇따른다.

우수한 학생의 뒷덜미를 잡는 정부가 인재입국(人材立國)을 외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부가 내세우는 정의(正義)나 형평과도 거리가 멀다. ‘노무현 입시제도’에 고통을 겪는 고3 학생과 학부모는 무슨 죄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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