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성 교수의 소비일기]사은품의 함정

  • 입력 2007년 6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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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백화점에서 보내 온 청구서를 받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일정 금액을 구입한 사람에게 사은품을 준다는 ‘반가운’ 티켓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 이번엔 10만 원 이상 사면 차량용 간이 청소기를 준다네요.

이런 사은품 티켓에는 늘 눈이 번뜩 뜨입니다. 어차피 필요한 물건을 사면서 그릇 식용유 등 온갖 상품이 딸려 오니, 굳이 무시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같은 값에 ‘덤’이 생기니 이득이지요.

그래서 사은품 티켓에다 정문 앞 카페에서 공짜로 준다는 커피 티켓까지 챙겨들고 나섰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다 샀는데도 합계가 9만 원입니다. 10만 원을 채우려고 다시 이곳저곳 기웃거립니다. 더 ‘필요한’ 물건이 없나….

사실은 더 ‘살’ 게 없나 여기저기 헤맸는데 막상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습니다. 가격은 다른 곳보다 비싸고, 떠나야 할 시간마저 다가오면서 슬슬 짜증까지 났습니다. 그러나 1만 원이 부족해 청소기가 ‘날아간다’고 생각하니 아쉽더군요. 결국 좀 묵혀 놓을 수 있는 샴푸를 사서 10만 원을 채웠습니다. 영특한 구매자가 된 듯 뿌듯해 하면서요.

하지만 지루한 순서를 기다려 받아 든 청소기는 조악하기 그지없습니다.

공짜인 만큼 품질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건 전혀 사용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 아니 ‘이거 쓸 수는 있나’ 싶은 상품이었습니다. 이런 걸 받으려고 그 시간을 헤매고 다녔나,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자책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백화점(기업)이 산타클로스처럼 장을 보러 나온 소비자에게 선물을 나눠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마치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공짜 사은품을 즐길 수 있는 듯한 착각 속에, 사은품을 챙기려 더 열심히 사들입니다.

하지만 기업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으며, 사은품 비용은 온전히 소비자가 지불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명심해야 하는 대목이지만 우리는 쉽게 잊어버립니다.

아이고, 저 역시 오늘도, 여전히 우편물에 딸려 온 사은품 티켓을 들여다보고 있네요!!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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